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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91)미포조선도 승격 거부, 아무도 하기 싫은 평양감사?

미포조선도 승격 거부, 아무도 하기 싫은 평양감사?

2007년 12월 25일


 

스포츠서울이 선정한 ‘2007 한국축구 10대 뉴스’를 보면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당시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던 일들도 되짚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원인을 갖다 붙일 수 있다. 그러나 꼭 하나 납득되지 않는 일이 있다. 바로 내셔널리그 우승팀 울산 현대미포조선의 K리그 승격 거부다.


“우승하면 무조건 승격한다”고 공언했던 미포조선 관계자는 지난달 23일과 28일 수원시청과 내셔널리그 챔피언 결정전 1,2차전에서 승리해 우승한 뒤 “승격을 재검토하겠다”고 해 불안감을 자아내더니 며칠 후 1차전 ‘실격승’을 거론하며 “정정당당하게 우승해 내년에 승격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18일 한국실업축구연맹에 보낸 공문에서 ▲우승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승격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지 않고 제반 여건이 미흡하며 ▲선수수급 및 연고지 조정 등 과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실업연맹은 사흘 뒤 미포조선의 입장을 수용해 ‘2007년에는 K리그 승격대상이 없다’고 공지했다.

크게 보면 미포조선의 입장은 ‘무조건 승격’에서 ‘승격 거부’로 180도 달라졌다. 그러나 정반대의 결론으로 옮아가는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다. 내년에 우승해 승격하겠다는 말은 승격 거부에 따른 징계와 감점을 고려하면 현실성 없는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미포조선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승강(격)제에 대한 소신을 여러차례 나타낸 것을 기억하는 축구팬은 ‘승격 후 서울 입성 프로그램’에 따라 실제로 서울시와 의견까지 교환한 것으로 알려진 미포조선의 논리를 수긍할 수 없었다.

미포조선의 속내를 알 수 없는 축구인들은 여러 추측을 내놓았다. 승격의 중요한 축인 K리그가 서울 입성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신인 드래프트까지 미리 끝내 버린 점이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서울 입성 비용 75억원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짐작한 사람들은 미포조선의 잇따른 승격거부 발언이 서울시와 K리그를 상대로 한 협상용이라고 추측했다. ‘정 회장이 미포조선이 아닌 제3의 기업이나 단체가 서울에 들어오려는 뜻을 전해듣고 포기 결단을 내린 것이다’라거나,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정 회장의 정치적 텃밭인 울산은 물론 축구팬이기도 한 유권자들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치적인 판단 때문이다’는 얘기도 나왔다. 급기야 ‘정 회장이 미포조선의 승격거부 사태를 통해 알맹이가 빠진 채 통과된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을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억측까지 나돌았다.

미포조선이 이같은 분석들을 차례로 부인하면서 실업연맹 일부 인사는 “조건을 가장 잘 갖춘 국민은행과 미포조선이 승격을 거부했다. 3년 정도 승격제를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무슨 궁리를 어떻게 하든 미포조선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팬들의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교수신문이 올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을 담은 ‘자기기인(自欺欺人)’을 선정했다고 23일 발표했다. 자신도 믿지 않는 말로 남까지 속이는 사람 또는 도덕 불감증 세태를 풍자하고 망언을 경계하려는 것이 선정이유라고 한다. 지난해 국민은행의 승격거부 사태 때 격분했던 축구팬은 이번에는 ‘그럼 그렇지’라며 냉소한다. 이들의 아픈 속을 헤아리노라면, 속아 넘어가도 좋으니 그럴싸한 해명이라도 꼭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