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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93)이천수 대표팀 탈락, 일회성 길들이기 아니다

이천수 대표팀 탈락, 일회성 길들이기 아니다

2008년 1월 8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천수(27·페예노르트)가 50명의 국가대표팀 예비 엔트리에서 탈락했다.이번 명단은 7년만에 국내파 사령탑에 오른 허정무 감독이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향해 한국축구의 틀을 새로 짜겠다며 작성한 밑그림이라는 점에서 이천수의 심경은 복잡할 것으로 보인다.


축구팬의 반응은 다양했다.'시원하게 잘 했다'는 댓글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선수 길들이기다.이천수가 본보기로 걸려 들었다', '그래봤자 중요한 순간 다시 부를 것이다', '허 감독은 쇼를 하지 말라'는 주문도 있었다.그러나 허 감독이 취임 후 강조한 대표선수 선발 원칙을 보면 사태는 단순하지 않다.특정선수의 아픈 구석을 굳이 돌아보는 것도 이천수 사태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천수의 최근 언행을 살펴보자.


지난해 시즌 도중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진출한 이천수는 시즌이 한창인 지난해 12월 돌연 귀국했다.귀국 후, 페예노르트 입단을 위해 출국하기 하루 전인 9월 21일 술집 마담을 폭행했고, 다음날 고소를 당했으며, 얼마 뒤 고소인이 소를 취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표선수의 몸가짐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됐다.12월 11일 출국장에서 취재진을 만난 이천수의 측근은 "이번 일은 특종도 뭐도 아니다.사실 얼마 전에는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있었지만 해당 신문사가 문제삼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솔직히 이번에 귀국해서도 룸살롱과 단란주점에 한번씩 갔었다"고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지난달 31일 다시 휴가를 받아 귀국한 이천수는 같은 날 또 강남의 한 술집을 찾았다가 옆자리의 손님과 시비에 휘말리는 등 구설수에 올랐다.


이천수가 대표팀 엔트리에서 탈락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이같은 연이은 언행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이천수에 대한 마음을 접은 것은 좀 더 '본질적인' 문제의식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현대 입단 초기 시절 이천수는 동료들이 숙소에서 합숙할 때 따로 호텔에서 생활했고, 원정경기 때는 구단버스가 아닌 승용차를 타고 혼자 이동했다.물론 이천수의 이런 행동이 그의 탓만은 아니다.특권과 반칙을 묵인한 코칭스태프의 무원칙, 술자리를 말리기는 커녕 합석하는 것으로 선수의 환심을 사려 한 에이전트, 에이전트사 임원을 겸했다는 의혹을 받는 구단 고위인사의 대책없는 처신도 도마 위에 올랐다.이천수가 해외진출 조건을 놓고 구단과 갈등하던 지난해 초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과 만나 담판짓겠다고 한 배경에는 이처럼 어지러운 상황이 있었다.


K리그 관계자들은 "2002년 이후 선수들이 대표팀에 뽑혀 파주에만 갔다오면 딴사람이 된다.경기에 나서지도 못한 후보 선수들도 최고 스타인양 행동한다.일부 선배들의 잘못된 얘기를 듣고 에이전트를 갈아 치우거나 구단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며 "파주가 대표선수들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선수를 버리는 곳이 돼 버렸다"고 한탄한다.허 감독이 '정신력'과 '국가관'을 대표선수의 기본으로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이같은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천수는 지난 6일 출국에 앞서 대표팀 탈락을 자성의 계기로 삼기는 커녕 "소속팀 적응을 위한 감독님의 배려"라며 아전인수격 해석을 했다.그러나 이천수를 둘러싼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이번 일을 단순히 '선수 길들이기' 차원에서 보면 안 된다.이천수의 잘못된 인식이 여전하다면 허 감독은 그가 페예노르트에서 주전으로 펄펄 날더라도 외면할 수 있다.유난히 쇼맨십이 강한 이천수가 '쇼'를 할 대상은 외부가 아니다.그 열정을 자신의 내부에 잠자고 있는 근성과 잃어버린 초심을 되살리는데 태워야 한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