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장 선거의 해, 정몽준 회장이 할 일
2008년 1월 1일
연말 만난 한 원로 축구인은 “내년 축구계에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겁니다”라고 말했다. 2009년 초 예정된 차기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회장 후보로 거론된 또다른 인사는 “나는 절대 안 나갑니다. 내가 나가면 12명의 후보가 난립했던 대통령 선거처럼 회장 선거가 혼란스러워질 게 뻔해요”라고 말했다. 외부의 유력 인사를 영입해 추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정몽준 회장이 지난해 12월 27일 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올린 ‘2008년 새해 소감’이라는 글에서 내년 초까지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하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정 회장은 후임 회장에 대해 “축구를 사랑하고, 국민 누구나 ‘저 분이면 축구를 발전시킬 수 있겠구나’ 하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며 여운형 선생(2대), 하경덕 박사(5~6대), 최순영 회장(39~43대)과 김우중 회장(45~46대), 신익희 선생(7대), 장택상 총리(12대), 장기영 부총리(19,21,23대), 윤보선 대통령(9대) 등을 거론했다. 2005년 11월 축구협회의 사단법인 현판식 뒤 “경기인(축구인)을 포함해 모든 국민이 존경할 만한 분을 모셔 오겠다”고 한 말과 궤를 같이 한다.
1993년 1월 42세의 정열적인 나이에 47대 축구협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2002년 월드컵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 축구 외교력 강화, 인프라 확충과 행정 선진화, 협회 재정의 흑자 전환이라는 큰 업적을 남겼다. 2002년 월드컵 뒤 축구계에서는 정 회장이 프로축구를 비롯한 국내 축구 발전의 토대를 다진 뒤 물러나 국제축구계에서의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으로 존경받는 선택일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정 회장의 이번 글은 최근 나돈 ‘재추대설’에 분명한 선을 긋고 축구계 여론과 코드를 맞췄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정 회장이 아직은 외부인사를 추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국축구 발전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대안을 적당한 때에 공표하고 축구인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은 오랜 기간 축구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정 회장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 회장의 견해가 진정으로 축구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축구계의 검증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축구인들은 몇년 사이에 여러 모습의 선거를 겪거나 지켜봤다. 2005년 2월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검찰이 특정후보의 비리혐의를 들추는 볼썽 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연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서는 ‘단독 추대’를 조건으로 연임을 수락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후보 등록 마감 직전 일부 골프인들이 ‘기습 등록’하자 후보에서 사퇴했고, 골프인들이 박 회장을 다시 찾아가 연임을 간청하는 일도 벌어졌다. 최근 대한체육회는 53개 산하 단체장으로 제한된 회장 선거인단 수를 3000명까지 늘리자는 ‘우리 손으로 회장 뽑기 논의’를 진행중이다. 12명의 후보가 난립했던 대통령 선거의 기억도 생생하다.
정 회장이 밝힌 것처럼 남은 1년 2개월 임기 동안 ‘할 일이 많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일은 통합의 리더십으로 축구계 화합을 다지는 한편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공정한 경쟁의 룰을 만들고 선거 일정과 방식을 분명히 해 ‘예측가능한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경계할 일은 축구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가라는 본질적인 과제보다 ‘누구를’이라는 결론을 먼저 내놓고 논의를 진행하는 성급함이다. 지난 대선에서 본 것처럼 본말이 전도된 논의는 차기 회장 선거를 ‘정책 경쟁을 통한 화합의 축제’가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낳는 소모적인 정쟁’으로 전락시킨다. 이런 상황은 정 회장의 명예로운 퇴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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