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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

(168)축구계 인사들의 신태용論, '영덕 촌놈'이 '리우의 난놈' 되려면 (168)축구계 인사들의 신태용論, '영덕 촌놈'이 '리우의 난놈' 되려면2016년 1월 29일 신태용(46)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은 2016년 벽두 한국축구계에 가장 선명한 이름을 새긴 사람이다. 신 감독은 30일 오후 11시45분(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알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2016 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결승에서 숙적 일본과 결전을 앞두고 있다. 지난 27일 카타르와 준결승전 승리로 세계 첫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일본도 꺾고 아시아 정상에 오르면 더 좋겠지만 신 감독은 이미 많은 것을 이뤘다.(#참고 : 신 감독은 하루 뒤 일본과 결승에서 2-0으로 앞서다가 3골을 내리 내주면 충격적인 2-3 대역전패를 당했다.)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스포츠서울 .. 더보기
(155)'황새' 황선홍의 인생극장 2막10장 (155)'황새' 황선홍의 인생극장 2막10장2015년 12월 1일 이영표에 이은 두번째 커밍아웃입니다. 한국축구에서 황선홍의 위치는 특별합니다. 제 스포츠 기자 경력에서도 그렇습니다. 홍명보가 그동안 선수 생활에 이어 지도자로서도 좀 더 후한 평가를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지도자로서는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는 듯 합니다. 축구선수가 은퇴 후 할 일이 지도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도 두 사람의 행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클럽을 통해 차근차근 역량을 쌓고 깊이를 더해온 황선홍을 보면 우리 축구에도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황선홍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합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를 상대로 축구철학을 맘껏 펼칠 날을 고대합니다. [스포츠서울.. 더보기
(127)축구장에 물 아닌 자성과 격려를 채우자 축구장에 물 아닌 자성과 격려를 채우자2008년 9월 11일 7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노리는 한국축구가 10일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북한을 상대로 졸전을 벌인 끝에 간신히 1-1로 비겼다. 올림픽대표팀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조별리그 문턱도 못 넘고 귀국한 뒤 축구팬은 수영 박태환의 선전을 빗대 “축구장에 물 채워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분발을 촉구했다. 국가대표팀만이라도 시원스런 경기를 통해 ‘무너진 짝사랑탑’을 우뚝 세워주기를 바라는 역설적인 애정,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팬에게 한국축구는 또한번 차가운 배신으로 답했다. 핵심 공격수의 예상치 못한 부상, 북한의 텃세 등 악조건 속에서 거둔 원정경기 무승부라는 결과 자체에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국.. 더보기
(123)히딩크 방한과 '독이 든 성배' 히딩크 방한과 '독이 든 성배'2008년 7월 15일 거스 히딩크 러시아대표팀 감독이 7박8일간 방한 일정을 마치고 지난 14일 출국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뒤 아홉 번째인 그의 방한 타이밍은 절묘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과 베이징올림픽 본선을 각각 앞둔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축구팬은, 러시아의 유로2008 4강을 이끈 그의 메시지에 주목했다. 이딩크가 한국에 월드컵 4강신화를 선사하고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 감독으로 돌아간 직후인 2002년 9월 9일 파주NFC에서 벌어진 박항서 전남 감독의 ‘성명서 낭독사건’을 되돌아 보자. 월드컵 뒤 첫 국제축구대회인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이날 A4용지에 적어온 성명서를 읽었다. 6.. 더보기
(112)'니포축구'의 수제자, 세 남자 이야기 '니포축구'의 수제자, 세 남자 이야기2008년 4월 29일 1990년대 한국축구를 풍미했던 ‘러시아 신사’ 발레리 니폼니시(65) 감독에게 사사했던 조윤환(47) 전 전북 감독과 최윤겸(46) 전 대전 감독, 하재훈(43) 전 부천 감독(현 대한축구협회 기술부장)을 지난 22일 만났다. 부천SK의 운영과장으로 선수단의 살림살이를 도맡다 퇴직한 뒤 미국 애틀랜타로 이민을 간 윤태홍(63) 선생이 신병치료를 위해 오랜만에 귀국해 점심 약속을 잡았다. 기왕이면 당시 멤버들이 함께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행주산성 인근의 닭백숙집으로 걸음했는데 모두가 세 시간이 넘도록 자리를 뜰 생각이 없었다. 니폼니시 감독과 추억, 자신들의 향후 인생계획, 유공을 모체로 하는 제주 유나이티드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대화의 주제.. 더보기
(90) 허정무호, 한국축구의 '잃어버린 7년'을 찾아라 허정무호, 한국축구의 '잃어버린 7년'을 찾아라2007년 12월 11일 '근성의 승부사' 허정무(52) 전 전남 감독이 지난 7일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돼 98년에 이어 두번째 대권을 움켜쥐었다. 2000년 이후 외국인 감독들의 독무대였던 대표팀 감독 자리가 7년만에 국내파에게 넘어온 순간이었다. 돌이켜 보면 허 감독이 전면에 나설 때는 늘 한국축구의 위기였다. 김호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대표팀과 인연을 맺은 1993년 11월30일은 '도하의 기적' 끝에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낸 한달여 뒤였고, 국가대표팀 겸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맡은 1998년은 한국축구가 전무후무한 '월드컵 대회 중 감독 경질'의 폭풍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허 감독이 1998년 대표팀 감독에 처음 선임되는 과정도 올해.. 더보기
(73)‘포스트 베어벡’ 논의의 전제 조건 ‘포스트 베어벡’ 논의의 전제 조건2007년 7월 26일 47년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기대했던 베어벡호가 25일 이라크와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졌다. 일본과 3~4위전이 남아 있다. 태극전사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실망한 팬의 마음을 다독일 책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당위론과는 별개로 축구팬의 관심은 핌 베어벡 감독의 거취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경질한다면 후임은 누가 될 것인가. 새 감독을 뽑는다면 어떤 원칙과 절차가 필요한가로 급격하게 쏠리고 있다. 특히 논의의 핵심 초점은 또 외국인 감독인가, 아니면 2000년말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 지휘봉을 쥔 이후 외국인들의 차지가 된 국가대표팀 감독직이 7년여만에 국내 감독에게 돌아올 것인가로 모아진다. 이같은 여론의 흐름과,.. 더보기
(72)경주 김유신 김춘추, 그리고 축국 경주 김유신 김춘추, 그리고 축국2002년 5월 31일 첫 월드컵 본선 16강 진입을 노리는 히딩크호가 지난 27일 천년 고도 경주에 마무리훈련캠프를 차렸다. 히딩크호는 이 곳을 베이스캠프로 해 4일 폴란드전(부산), 10일 미국전(대구)을 치르고 11일 인천으로 이동해 포르투갈과 운명의 대결을 벌인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대표선수들은 잘 모르겠지만 경주는 축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지닌 도시다. 지난 1993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둔 당시 김호 감독이 이곳에서 훈련한 뒤 ‘도하의 기적’을 거쳐 본선에서 2무1패의 선전을 펼치며 16강에 가장 근접했던 기억도 새롭다. 당시 숙소와 훈련장도 지금과 같은 현대호텔과 시민운동장이었다. 허정무 감독의 2000년 시드니올림픽팀도 잠깐 머물렀는데 역.. 더보기
(66)베어벡이 또 돌아보게 한 대표팀 소집규정 베어벡이 또 돌아보게 한 대표팀 소집규정2007년 6월 19일 지난 2005년 1월 4일 차경복 전 성남 감독(지난해 작고· 당시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공동회장)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후 광화문에서 있었던 행사에서 모든 영광을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과 거스 히딩크 감독 둘이서만 누렸다. 정 회장이 한마디라도 축구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이런 영광이 있다고 했다면 서운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축구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지도자협의회가 축구협회와 한참 대립각을 세우던 당시 차 감독의 눈물은 다른 의미로도 읽혔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프로축구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해달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요구의 핵심은 대표팀 소집규정 개정이었다. 그해 말 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은 4명씩의 .. 더보기
(64)10년만의 네덜란드전, 줄어든 3골의 의미 10년만의 네덜란드전, 줄어든 3골의 의미2007년 6월 5일 1998년 6월 20일 프랑스월드컵 E조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했다. 지난 2일 한국은 그 네덜란드에 0-2로 졌다. 그러나 골차를 3골로 줄였다. 그 때와 지금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당시 네덜란드는 화려한 스쿼드의 세계 최강팀이었고, 벨기에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겨 한국전에서 최대한 많은 골을 뽑아야 했다. 이번에 온 네덜란드는 신예들이 주축을 이뤘고 경기의 성격도 친선경기였다. 장소도 서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번에 한국이 줄인 3골차의 의미를 반감시키지는 않는다. 한국 선수들도 바로 3일 전 컵대회 6강 플레이오프에서 연장혈투를 벌였고 잉글랜드 프레미어리그 4총사는 부상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