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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26)프로축구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가'

프로축구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가'

2006년 7월 19일



월드컵 기간 중인 지난달 말 독일에서 만난 한 축구인은 “한국 축구는 전문가가 아닌, 축구를 취미로 아는 사람들이 주무르고 있다”고 자조했다. 16강 진출이 물 건너간 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보다 심판 탓을 하며 핌 베어벡 대표팀 감독을 서둘러 후임 감독으로 선임하는 대한축구협회의 졸속 행정을 빗댄 말이었다. 안과 밖에서 애쓰는 사람들의 고심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의 비아냥 정도로 치부하고 싶었던 그의 말은 곧 재개된 프로축구의 난맥상을 통해 진실임이 입증됐다.


참담한 ‘기권패’가 기록된 지난 16일,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은 “월드컵 뒤 팬의 외면을 받던 프로축구가 겨우 정상궤도에 들어서려고 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도대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각에 따라 구구한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답은 자명하다. 축구를 왜 하는지, 축구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사태의 근본 원인은 예비일도 없이, 숨쉴 틈도 주지 않는 빡빡한 일정을 잡아놓은 축구행정에 있다. 당일 돌발상황에 대한 준비에 소홀했거나, 준비한 내용을 이해 당사자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집행하지 못한 행정력을 탓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를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각 주체들이 프로축구를 프로축구답게 만드는 핵심, 즉 갈고 닦은 기술을 팬에게 보여주겠다는 전문가다운 자부심, 수많은 사람들의 치열한 고뇌의 산물인 서비스를 고객에게 펼치고 정당한 평가를 받겠다는 프로다운 자신감은 고사하고, 자신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직업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마저도 팽개친 ‘직업윤리의 실종’이다.


연맹은 18일 긴급이사회를 소집하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뼈를 깎는 성찰이 없어 또한번 임시방편에 자족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월드컵 이후 프로축구가 살아야 한국축구가 산다는 공감대는 이미 확보됐다. 프로축구의 존립 기반 자체가 붕괴하면 협회와 연맹, 프로축구과 대표팀, 연맹과 구단, 구단과 선수간의 이해 다툼 등 지엽적인 문제도 의미가 없어진다.


김수영 시인은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고 ‘풀’을 노래했다. 프로축구가 팬에게 기쁨을 주기는 커녕 또다시 축구 주체들보다 먼저 울고 있는, 지혜로운 ‘풀(팬)’이 일어날 것을 기다리는 딱한 처지에 놓였다. 거듭된 잘못을 참회하며 종아리를 걷는 결단만이 ‘좋은 축구’를 기다리다 지쳐 누운 팬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결정 하나하나가 한국축구를 좌우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절박한 심정으로 대안을 논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