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과 마라도나, '박치기와 신의 손'
2006년 7월 26일
국제축구연맹(FIFA)이 2006 독일월드컵 결승전 이탈리아-프랑스전에서 나온 프랑스의 축구영웅 지네딘 지단의 ‘박치기 사건’에 대한 최종 결론을 지난 21일 내렸다. 사건의 ‘피해자’이자 원인 제공자이기도 했던 이탈리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가 24일까지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FIFA의 결정으로 독일월드컵은 이미 ‘역사’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결승 연장전을 지켜본 팬과 함께 지단의 느닷없는 행동에 경악했던 기자는 12일간의 조사를 거쳐 출장정지와 벌금, 사회봉사 활동이라는 다소 가벼운 벌칙으로 사건을 종결시킨 FIFA의 결정이 솔직히 다행스럽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대화의 전부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체적 진실을 파고 들어야 할 기자가 다행스럽다고 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이 ‘신화’와 ‘숙제’ 하나쯤을 남겨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FIFA가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나설 때부터 이런 정도의 결론이 날 것으로 짐작했다. 지단이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마테라치가 심한 말을 했지만 축구와 월드컵을 위해 발설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사건 직후 지단이 마테라치의 ‘트레시 토크’의 일부를 공개한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1986 멕시코월드컵 8강전 아르헨티나-잉글랜드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손으로 볼을 쳐 골을 기록하는 ‘신의 손’ 사건을 일으켰다. 8분 뒤 수비수 5명을 따돌리는 ‘신의 발’까지 보여준 마라도나는 경기 후 “그것은 신의 손과 내 머리의 합작품이었다”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19년 뒤인 지난해 “신이 돕기는 했지만 골을 넣은 것은 내 손이었다. 무의식 중에 손으로 공을 골대 안으로 밀어넣었다”고 고백했다. 만약 마라도나가 경기 직후 손을 쓴 것을 시인했다면 어땠을까.
피땀을 흘리며 극대화한 개인의 재능과 열정, 팀 플레이가 룰이라는 객관적인 잣대를 통해 표출되는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종종 오심을 비롯해 뜻하지 않은 외부적인 요인이 개입해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팬들은 공정성, ‘능력에 따른 평등’이라는 이상이 실현되는 ‘정의의 승리’를 보는 한편 의외성이라는 또다른 요소에 의해 생산되는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느낀다. 두 측면을 모두 긍정하는 여유를 가질 때 스포츠는 전쟁이나 경쟁의 대체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의미를 갖는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서 기능하게 된다. 박치기 사건과 같은 일은 이같은 스포츠의 기능과 의미망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의 하나이다.
지단의 박치기 사건은 이제 월드컵의 신화가 됐다. 신화가 신화다울 수 있도록, 팬들의 상상력을 위해, 모든 것을 공개하지 않고 적절한 여백을 남겨준 당사자들과 FIFA의 결정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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