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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24)펠레의 '예언'은 왜 '저주'가 됐나?

펠레의 '예언'은 왜 '저주'가 됐나?

2006년 5월 23일


독일월드컵 개막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OO의 저주’ 시리즈가 인터넷 공간을 떠돌고 있다. 그 중 이른바 ‘펠레의 저주’가 가장 유명하다. ‘축구 황제’ 펠레가 우승후보로 꼽은 팀은 여지없이 중도 탈락했고, 칭찬한 선수들은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 음료회사의 저주가 화제에 올랐다. 이동국을 비롯해 이 음료 회사 광고에 출연한 선수들이 줄줄이 다쳤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축구팬에게 단순한 소문을 넘어 확고한 믿음의 단계까지 간 듯하다.


최근 한 방송사가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것”이라는 펠레의 말을 내보내자 네티즌은 “펠레의 저주도 모르느냐. 왜 펠레와 인터뷰를 했느냐”고 항의했다. 팬들은 올해초 펠레가 “한국의 유럽파가 월드컵에서 활약할 것”이라고 말하자 당시에도 발끈하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프랑스가 지네딘 지단의 활약에 힘입어 우승후보에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지단은 부상으로 고전했고 프랑스는 조별리그만 끝내고 보따리를 쌌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펠레의 저주는 과연 실체를 가진 것이며 이번 월드컵에서도 통할 것인가. 결론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이다. 펠레의 발언이 빗나간 경우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말대로 된 것도 있기 때문이다. 2002년 펠레는 “한국이 충분한 준비를 했고 16강뿐만 아니라 깜짝 놀랄만한 이변도 가능하다”고 말했는데 한국은 16강을 넘어 4강신화를 썼다.

 

그럼에도 ‘펠레의 저주’라는 말은 왜 생겼을까.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말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다. 한 카드회사의 후원을 받는 펠레는 월드컵 시즌만 되면 전 세계를 돈다. 도착한 국가에 대한 쓴소리보다는 듣기 좋은 말을 남발할 수밖에 없다. 예언이 빗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또다른 사람들은 펠레의 저주는 역설적으로 그의 유명세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주장한다. 50년 가까이 세계축구계의 거물로 활동해온 그의 말에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고 평가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펠레가 세계 각국의 세세한 축구정보에 대해 잘 모르고 일반론을 자신의 말인양 옮기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은 브라질 대표팀 사령탑 재임 때 “펠레가 식언하는 것은 그가 축구에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이번에 한국은 펠레로부터 기분좋은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이 맞으면 펠레가 ‘축복’을 내렸다고 생각하자. 틀리면 ‘저주’가 통했다고 잠시 화를 내도 된다. 그러나 그 정도에서 그치자. 축구 자체가 즐기자고 존재하는 것이지, 고뇌하기 위해 탄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