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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23)독일월드컵, 숙제가 아닌 축제로 즐기자

독일월드컵, 숙제가 아닌 축제로 즐기자

2006년 5월 16일



드디어 월드컵 시즌이 오긴 온 모양이다. 지난주 지인의 상가를 찾았다. 문상객들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월드컵으로 옮아갔다. “16강에 들 수 있겠느냐”는 어려운 질문이 필자에게 넘어왔다. “선수들을 보면 가능해 보이지만 축구 전문가들을 만나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한 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70~80%의 일반 국민들이 16강에 진출할 것이라고 본 반면 프로축구팀 감독, 해설가 등 전문가들은 31명 중 16명이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축구라는 것이 이처럼 알면 알수록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종목이다.


지난 11일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본선 엔트리 23명 발표 직전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와 오른쪽 풀백과 골키퍼 자리를 두고 내기를 했다. 결과는 ‘송종국 발탁-차두리 탈락’, ‘김용대 발탁-김병지 탈락’으로 나와 차두리와 김병지가 함께 발탁될 것이라는 의견을 낸 필자의 완패였다. “미리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항변에 펄쩍 뛴 그는 “내가 감독이라도 당연히 그렇게 뽑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가에서 필자에게 질문했던 문상객은 미지근한 대답이 불만스러웠던지 “중요한 것은 선수선발이 제대로 됐느냐다. 대한민국에서 축구를 가장 잘 하는 선수들이 뽑혔다면 어떤 성적을 내더라도 ‘이게 우리 축구의 현실이구나’ 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수용자’ 입장을 덧붙였다. 김 전무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한국축구가 적어도 이런 문제는 걱정할 것이 없게 됐다는 마음과 함께 이제 우리 축구팬도 축구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최근 방한한 거스 히딩크 전 2002년한·일월드컵대표팀 감독은 “월드컵 자체를 즐겨라”는 메시지를 건넸지만 그동안 우리는 특히 월드컵 성적에 대해서는 강박관념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 2002년 월드컵 1주년을 맞은 지난 2003년 스포츠서울이 마련한 좌담회에서 한 프로축구 프런트는 “그동안 한국축구는 월드컵 때만 되면 스스로 엄청난 숙제를 내놓고 허덕여 왔다. 이젠 축구가 숙제가 아닌, 축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이 말에 공감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을까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축구란 그라운드에서 뛰는 11명의 전력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경기다. 그러나 그 전력이란 사령탑의 적절한 작전 지시, 선수들의 투지, 상대에 대한 정보 수집과 정확한 대처, 체력 및 조직훈련, 현지에서의 적응훈련, 식단에 이르기까지 한 나라 축구가 가진 능력의 총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출전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팬의 성원이다. 대표팀의 홍명보 코치는 최근 2002년 한국축구가 4강에 진출해 세계를 놀라게 한 가장 큰 힘은 팬의 응원이라고 말했다.


태극전사들이 지난 14일 소집됐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시킨다고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축구 자체를 즐기면서 대표팀에도 기를 불어 넣어주는 축구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