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홍명보 카드'도 실패한다면?
2006년 8월 1일
대한축구협회가 지난달 25일 홍명보 코치(37)를 핌 베어벡 국가대표팀 감독(50)을 보좌할 코치로 임명했다. 협회는 지난해 9월 홍 코치를 아드보카트호에 발탁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베어벡 신임 감독의 강력한 요청이 선임 배경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협회는 선임을 앞두고 규정을 어겨가며 홍 코치에게 1급 지도자 과정을 이수케 하는 등 정지작업을 해 수뇌부의 의사를 짐작케 했다. 정몽준 회장은 독일월드컵 후인 지난달 15일 홍 코치와 이영표 박지성 등 축구계 ‘성골’들의 만찬을 주최해 홍 코치에게 힘을 실어줬다. 협회 고위 관계자도 “베어벡 체제가 2010년까지 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 국내 감독 중 대표팀을 맡을 사람이 누가 있느냐”라고 말해 축구계에 떠도는 소문처럼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는 홍 코치에게 대권을 맡길 수도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홍 코치가 체계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지도자로 성장하는 것은 권장할 사항이다. 선수로 쌓은 업적은 물론 후배들의 신망을 고려하면 그는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경험한 축구계의 ‘386그룹’이 이전 세대와 다른 사고와 행동양식을 보여주고 있고, 홍 코치가 그 선두그룹의 일원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구상은 한국축구의 발전이라는 큰 그림에 기초할 때 정당성을 확보한다. 세대교체는 물흐르듯 자연스러워야지 특정인의 의중이나 상황논리에 따라 인위적으로 진행되면 부작용이 따른다.
‘국내 지도자 중에서 대표팀을 맡을 사람이 없다’는 협회 고위 관계자들의 인식대로라면 40~50대 국내 지도자들은 한국축구의 ‘잃어버린 세대’가 돼 버린다. 40~50대 지도자들의 경우 능력 자체의 문제보다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와 제대로 된 지원을 못 받은 것이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최근의 상황은 홍 코치 본인에게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아드보카트라는 큰 나무 아래에 있을 때와는 달리 베어벡 밑에서 홍 코치는 최소 ‘절반 이상’의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현재 한국축구 내부의 문제와 주변 상황을 종합해볼 때 2010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의 선전은 고사하고 2007년 아시안컵, 2008년 올림픽 성적도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독일이 젊은 클린스만을 앞세워 2006독일월드컵 4강에 올랐지만 독일과 한국의 축구수준은 큰 차이가 있다. 한국으로선 2010월드컵 지역예선 통과도 버거울 수 있다.
협회는 대표팀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수들의 해외이적을 권장하고 K리그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등 여러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지도자 양성 문제에 대해서는 ‘홍명보 카드’을 만지는 것 외엔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 1998년 차범근, 2000년 허정무 감독의 예처럼 ‘홍명보 카드’가 적어도 대표팀의 영역에서는 ‘실패’로 간주될 경우 ‘한국축구의 미래는 이영표나 박지성에게 맡겨야 하나’라는 농담이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다. 협회의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큰 그림이 아쉽다.
'믹스트존-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차범근 이장수 베어벡의 제각각 대표 선발 기준 (0) | 2014.04.17 |
---|---|
(29)프로축구, 모두가 우승할 수 있나? (0) | 2014.04.17 |
(27)지단과 마라도나, '박치기와 신의 손' (0) | 2014.04.17 |
(26)프로축구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가' (0) | 2014.04.17 |
(25)또 터진 에이전트 송사를 어찌 할까? (0) | 2014.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