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 "반대파와 인위적 화합 없다"
2009년 1월 30일
"임·직원 상견례에서 올해 꼭 할 일의 핵심은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채워 대표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22일 대의원총회에서 제51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선출된 조중연(63) 신임 회장은 2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국가대표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축구협회 행정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회장 취임 뒤 스포츠서울을 통해 처음으로 가슴 속의 포부와 비전을 밝힌 조 회장은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어제도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2시에 일어나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을 메모했다"며 한국축구 수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의욕을 드러냈다.
조 회장과 인터뷰에 앞서 축구협회 직원들이 회장실에 있던 전임 정몽준 회장의 짐을 내가 한국축구의 수장이 바뀌었음을 실감케 했다.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채워라
-지난 22일 회장 당선 후 '발전을 통한 변화'를 강조했는데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인 전임 정몽준 회장님은 월드컵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 등 주로 외치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나는 내치에 집중해 지속적인 발전과 창조적인 계승을 하고 싶다. 최근의 어려운 경제 속에 한국축구의 현실도 일을 더 벌이기 보다는 내실을 다지기를 요구한다.
-CEO 회장을 표방했는데 내실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지난 23일 축구협회 직원 상견례와 오늘(29일) 실·국장 회의에서 세가지를 얘기했다. 첫째, 올해 한국축구의 최대 과제는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과 각급 청소년대표팀의 세계대회 선전이다. 둘째, 정부와 함께 추진중인 초·중·고교 축구 주말리그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셋째, 축구협회 전 직원이 사업 마인드로 뛰어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춰야 한다. 특히 대표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석을 가득 채워야 한다. 지하철과 버스 광고는 물론 필요하면 가정 배달 아주머니도 활용해야 한다. 경기장이 차면 중계권료와 입장료 수입이 올라가고, 스폰서도 유치된다. 선수들도 더 열심히 뛰어 전력도 향상된다
◇화이부동이 화두, 인위적인 포용은 위선
-허승표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에게 표를 준 10명의 반대자를 통합할 방안은. 허 이사장 진영에 인적, 정책적 연합을 제의했나.
제의하지 않았다. 대학교수들이 올해 화두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꼽았는데 동감한다. 화합하되 뜻을 굽혀 부화뇌동하지는 않겠다. 국가처럼 큰 조직에서는 광범위하게 인재를 구해야겠지만, 축구협회처럼 작은 문화단체가 생각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섞어 쓰면 내부 분열의 부담을 안게 된다. 위선으로 비칠 수도 있다. 포용을 위한 노력은 하겠다. 신임 이사 중 김종환 박사는 한국축구연구소에서 일했지만 축구발전에 대한 뜻이 같아 발탁했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5명의 이사 자리를 비워뒀다.
-정몽준 회장 체제의 2인자라는 인식이 아직도 있다.
2인자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위치에 따라 각자의 역할이 있고, 나는 그 역할에 충실했다. 전무와 부회장 시절 내가 욕을 먹고, 공은 정 회장께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최전선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상근 회장이 되겠다는 것도 결정을 최대한 빠르게, 현장 상황에 맞게 내리기 위해서다. 전무 때나 지금이나 내 판단의 기준은 '어떻게 하는 것이 축구발전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 단 한가지다.
◇선거 당일 사무실 정리한 정몽준 회장의 조언 듣는 것은 축구계의 행운
-축구를 깊이 아는 정치인인 정 전 회장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당연하다. 차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에 앞서 16년 동안 한국축구를 반석 위에 올린 경험을 지닌 정 회장의 조언을 듣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한국축구의 큰 행운이다. 수렴청정 얘기도 있지만 정 회장은 더 큰 일로 바쁜 분이다. 선거 당일인 지난 22일 정 회장이 회장실에 있던 짐을 다 쌌더라. 23일 오전 통화하면서 FIFA 부회장이자 축구협회 명예회장이기도 하니 회장실을 그대로 쓰면 좋겠다고 했더니, 나는 다른 사무실이 있으니 조 회장이 써라고 하셨다. 한편으론 서운하고, 한편으론 고맙고 그랬다. 그런 분이 FIFA 부회장이자 축구협회 명예회장으로 축구계와 인연을 끊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축구협회가 요청하면 언제든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선거과정에서 논란이 된 중앙대의원제를 폐지할 생각은. 제각각인 산하 연맹과 지방축구협회장 선거규정도 정비해야 하지 않나.
중앙대의원제도는 축구협회가 독단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가 정관을 고쳐야 해결될 일이다. 시·도와 연맹 회장 선거규정은 그동안 선거다운 선거가 없어 돌아볼 수 없었다. 불합리한 내용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게 손질해야 한다. 그게 내 몫이다. 다만 시와 도에 따라 대의원이 팀 대표로만 구성돼 있거나 시·군·구 회장으로만 구성돼 있는 등 특성이 있다. 이런 점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정부 예산 50억원으로 지역리그제 참여 지도자 처우 개선
-지역리그제에 대한 일선 지도자들의 반발이 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정책의 근본방향이 옳다면 시행해야 한다. 30일 토론회에서 일선 지도자들의 애로사항을 들어보고 해결책을 찾겠다. 지난 18일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를 만나 리그제가 정착되려면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 지도자에게는 긍지를, 팀에는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설득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지도자들에게 월 50만씩 지원할 예산 50억원이 확보될 듯하다. 이를 통해 공부하는 선수를 육성한다면 축구계는 물론 정부에도 보람된 일이다.
-기능이 겹치는 협회 조직의 개편 계획은.
유소년발전위원회와 기술위원회를 기술발전위원회로 통합하겠다. 기술교육국에는 기술위의 결정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중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한편 각급 대표팀 감독 후보군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기겠다. 16개 시·도에도 상비군 제도를 도입해 협회 기술교육국과 시·도협회가 함께 운영하며 소질있는 선수를 조기에 발굴하겠다.
-스포츠서울이 설날특집으로 대표선수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지도자의 자질 향상이 두번째 과제로 거론됐다.
선수들이 참 어려운 얘기를 했다. 학생의 수준은 지도자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98년 전무로 부임했을 때 C코스 지도자 교육과정도 없었다. 이제는 S코스까지 완비했다. 황선홍 부산 감독이 "한국에도 이런 과정이 있다는 걸 몰랐다"고 하더라. 협회는 세계적인 지도자를 초청하는 등 교육의 수준을 더 높이겠다. 배우는 사람이 강한 의욕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큰 열매를 맺을 것이다.
-2022년 아시아 몫이 될 월드컵 유치전에 중국과 일본, 호주가 뛰어들었다. 조 회장은 오랫 동안 북한 축구계 인사들과 교류했다. 대외적인 도전과제를 든다면.
말을 먼저 던져 놓고 아니면 말고 식의 일처리는 무책임한 것이다. 더 심도있게 고민한 후 가능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겠다.
◇'차붐' 경질과 축구인 분열 가슴 아파, 월드컵 4강 지원은 보람이자 영광
-한국축구의 격랑기에 기술위원장, 전무, 부회장을 거쳤다. 보람된 일과 가슴 아팠던 일은.
조중연 하면 98년 프랑스월드컵 단장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사람들이 있다. 당시 차범근 감독을 경질한 것은 선배로서 지금도 가슴 아프다. 돌이켜 보면 '과연 그때 그랬어야 했나'하는 생각도 든다. 이젠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다. 축구인이 정권교체 등 시류에 편승해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요청하고 국정조사 빌미를 제공할 때도 마음이 불편했다. 2002년 월드컵 때 대표팀을 뒷바라지해 시청 앞 광장을 붉은 물결로 뒤덮고 4강 진출에 힘을 보탠 것은 큰 보람이자 영광이다. 국회의원 70명의 서명을 받아 부지와 예산문제를 해결해 파주NFC를 건립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병역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의원 143명의 서명을 받고, 16강 진출 확정 뒤 당시 주장 홍명보가 김대중 대통령께 건의해 '긍정적인 검토' 약속을 받아냈을 때의 희열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역대 회장 중 역할모델이 있나. 퇴임 때 어떤 회장이었다는 평가를 듣고 싶나.
역대 회장 중 정치인 실업인 등 훌륭한 분들이 많아 과연 내가 후보로 나서도 되나 고민했다. 역대 회장들은 나와 비교가 안 된다. 다만 사실상 첫 축구인 출신 회장으로서 내가 할 일이 따로 있고,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한다.
-축구 뿐 아니라 골프, 테니스 실력도 수준급인 것으로 안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법은. 선거 과정에서 가족의 조언이 있었나.
매주 일요일 새벽 각계의 친구들과 청계산에 오른다.2002년 히딩크 감독과 라운딩하면서 내가 70타를 쳐 84타를 친 히딩크 감독을 혼내준 기억이 난다. 산업은행 근무 때부터 테니스를 쳤는데 금융단 대표로 여러차례 전국대회에 나갔다. 김문일 전 테니스 국가대표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코트를 찾았는데 그동안 뜸했다. 다시 나가 보려고 한다. 아내와 두 아들은 축구를 비롯한 내 외부활동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회장 선거 때도 가족은 옆에서 가슴을 졸이기만 했다. 아내는 "딱딱하게 굴지 말고 대인관계를 원만히 하라"고 조언한다. 사실 부드러운 사람인데 일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굳어지는 것 같다.
류재규기자 jklyu@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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