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난 사람-인터뷰

배종신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 "태권도원은 위대한 체인지(體-認-至)의 출발점"

배종신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 "태권도원은 위대한 체인지(體-認-至)의 출발점"
2013년 3월 11일  

배종신(61)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과 인터뷰를 앞두고 '밀고 당기기'가 좀 있었다. 기자는 체육 행정 전문가로 한 길을 걸어온 그의 삶에 주목했다. '체육행정가로 사는 법'이라는 주제도 미리 정했다. 그러나 배 이사장은 태권도 얘기를 하고 싶어했다. "태권도 얘기가 30%는 넘어야 한다"는 조건도 걸었다.

1978년 당시 문교부에서 공직자로 출발한 배 이사장은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마무리된 28년간의 관료 생활에 이어 현재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에 이르기까지 35년간 체육 행정 전문가로 활약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등 한국 체육의 주요 현장이 그의 일터였다. 지난 2011년까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사무총장도 지냈다.

서울 중구 소월로에 있는 재단 이사장실에서 얼굴을 마주한 뒤 한 첫 질문은 결국 태권도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난달 12일(한국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태권도를 25개 올림픽 핵심종목(Core Sports)으로 결정했고, 태권도진흥재단은 오는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태권도원이 있는 전북 무주로 이전을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태권도의 올림픽 핵심종목 선정,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핵심종목 선정의 의미를 짚어본다면.

2020년까지는 핵심종목으로 가고 2024년부터는 재논의를 하게 됐지만 이번 결정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첫째 태권도가 글로벌 스포츠 25위 안에 들어 한국의 국기(國技)에서 글로벌 스포츠로 안정된 지위를 확보했다. 둘째 심판 판정, 재미 등 그동안의 비판을 수용해 콘텐츠의 가치를 높인 것이 런던올림픽을 통해 국제 스포츠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셋째 태권도가 유도와 함께 올림픽 핵심종목에 들어간 아시아의 무도 두 개 중 하나가 됐다.

 

배종신 이사장은 태권도의 올림픽 핵심 종목 선정에 따른 파급효과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영구종목으로 가기 위한 태권도의 혁신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일기자 sungil@sportsseoul.com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땀 흘리는 태권도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대단할 것 같다.

각국이 국가 차원에서 재정을 지원하며 태권도를 육성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에 퍼져 있는 태권도 사범 중에는 외국인의 비중도 높다. 태권도 자체의 발전과 함께 이들이 안정된 기반을 갖고 세계를 향해 꿈을 펼치게 됐다.

-영구종목까지 가려면 할 일도 적지 않은데.

방심하면 안 된다. 태권도가 퇴출 대상 5개 종목에 이름이 오른 것이 엊그제였다. 또다른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먼저 경기방식을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 무도로서의 태권도의 가치와 함께 생활.평생 스포츠로서의 가치를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에도 적극 전파해야 한다. 청소년의 인성 발달과 사회성 형성, 여성 장애인 노인 등의 건강과 장수에 기여해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행복지수를 높이는 종목의 이미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

-국내 태권도 단체만 해도 대한태권도협회(KTA), 세계태권도연맹(WTF), 국기원, 태권도진흥재단이 있다. 각 단체의 업무와 상호 관계가 궁금하다.

KTA는 경기로서의 태권도를 총괄하는 한국 대표 기관이고 WTF는 각국 태권도협회를 망라하는 국제기구이다. 국기원은 '신체단련을 통한 자기완성'이라는, 무도로서의 태권도의 가치를 창출하고 확산하는 본산이다. 태권도진흥재단은 종주국 한국의 상징이자 세계 태권도인의 성지인 태권도원을 운영하고 태권도의 역사와 이념에 대한 교육과 홍보, 기술에 대한 연구와 수련,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관광의 중심 기능을 한다. 관련 단체와 산업의 육성과 지원도 재단의 중요한 업무다.

◇The Great Change, 태권도원은 위대한 변화의 시작점

-재단이 곧 태권도원이 있는 무주로 옮기는데.

재단이 사업의 구심점인 태권도원이 있는 무주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 무주는 수도권은 물론 영남과 호남 등 전국에서 2시간 3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국토의 중심지다. 그러나 수도권에서 보면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재단 예산상 주거와 자녀 교육문제, 교통비 등 이전에 따라 추가로 발생하는 생활비를 지원할 여력이 없어 젊은 직원 중 20% 정도가 퇴직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빚어졌다. 젊은이들이 꿈과 열정을 불태울 공간이자 좋은 직장이 되도록 우리도 노력해야겠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이 좀 더 필요한 측면도 있다.

태권도원 조감도. 호수 옆 태극 문양 지붕 건물이 태권도경기장을 중심으로 하는 체험공간, 위 ㄷ자형 건물이 연수원을 핵심으로 하는 수련공간, 꼭대기 전망대 아래 어렴풋이 보이는 건물들이 태권전 등 상징공간이다. 내년 3월 공식 개원을 앞두고 재단 임직원의 무주 이전을 서두른 배종신 이사장은 예산이 부족해 직원 복지에 대한 여력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제공 | 태권도진흥재단

 

-태권도원 조성 공사 진행 상황은.

부지 70만평에 건축 연면적 2만 1000평에 이르는 시설과 조경, 정보통신망과 교통체계 등 태권도원 인프라 조성 공사는 현재 공정의 75% 정도까지 진행됐다. 6월 완공된다. 10월부터 시범운영을 한 뒤 내년 3월 정식 오픈한다. 무주군을 비롯한 지자체와 긴밀한 협력체계를 만들고 덕유산 등 자연 환경과 덕유산 리조트 등 관광 시설과 연계도 적극 시도할 생각이다. 완벽한 인프라 구축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교육, 문화, 관광 프로그램 수립 등 준비에 시간이 빠듯하다. 좀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이전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태권도원의 향후 비전은.

태권도원의 공간은 크게 경기장과 전시관 등 체험공간, 연구소와 연수원 등 수련공간, 태권도원의 핵심으로 태권전과 명인관, 명예공원이 배치된 상징공간 등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이 세 공간과 연계해 태권도원의 사명(Mission)을 '체(體.도전)인(認.도약)지(至.도달)'로, 영어로는 'The Great Change'로 잡았다. 태권도원이 방문자 각자의 내부에 '위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출발점이 되도록 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부 체육 담당 부처, 최소한 실 단위로는 격상돼야

-공직생활 대부분을 체육행정으로 채운 드문 이력을 지녔다. 처음부터 체육에 뜻을 뒀었나.

돌아보면 고시공부에 무슨 숭고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좀 심심한 사람이다. 공직도 내게는 하나의 직장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1978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잠깐 서울대 관재국에서 근무하다가 당시 문교부 체육국 발령을 받았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 유치가 국가적인 과제로 설정됐는데 여기에 멱살을 잡혀 코피를 흘리며 일하게 된 것이 체육행정의 출발이었다(웃음). 유치 활동 초창기엔 정부의 정책도 오락가락했고 정부 내에 회의론자도 많았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아시안게임만 하고 올림픽은 안 하면 안 되나', '나라를 들어먹으려는 미친 사람들 아니냐'는 등 비난도 많았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일본과 싸우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 아니냐. 못 이겨도 국격은 올라가는 것 아니냐'는 오기가 생겼다.

올림픽 유치 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체육부(이후 체육청소년부) 장관으로 오면서 체육 행정을 아는 사람들을 신설된 부로 끌어 모았다. '다른 부처도 좀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몸을 뺄 수가 없었다. 2002년 월드컵 때 또 불려가면서 '공직자는 개인 취향보다는 국가 과제에 전력해야 하는 존재다. 이젠 눈에 일에 보이면 무조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체육과 체육인에 대한 배종신 이사장의 애정과 신뢰는 각별했다. 체육 담당 정부 부처의 확대 개편 또는 격상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박성일기자 sungil@sportsseoul.com

 

-체육계의 숙원인 정부의 체육 담당 부처 독립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내가 체육 행정에 입문할 때와 비교하면 체육 단체와 관련 산업의 규모가 수십배 커졌고 시스템도 복잡해졌다. 그러나 정부 담당 부서는 지금도 국 단위에 머물러 있다. 독립 부처가 안 되면 실 단위로 격상은 돼야 한다.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체육을 잘 알고 뚜렷한 논리를 갖췄다. 현명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달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처음으로 국가대표 출신인 김정행 용인대 총장이 회장이 됐는데.

우리 체육의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었다. 체육인들도 행정을 할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 그동안 체육이 국민 생활에 기여한 점에 비해 외부의 지원과 평가는 인색했다. 이제는 체육인과 정부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미래를 설계할 때가 됐다.

◇월드컵경기장에 물 뿌린 얘기 자꾸 하면 4강 의미 퇴색된다

-2002년 월드컵이 체육 행정가로서 하이라이트였던 것 같은데.

공무원을 하다 보면 여러 일을 겪게 되지만 돌아보면 혼자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조직이 하는 일이다. 그 조직의 일원으로 서로 힘을 합쳐 월드컵을 유치하고 '무결점 대회(No Defective Game)'로 마친 것은 큰 보람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가장 큰 보람으로 삼는다는 배종신 이사장은 월드컵 당시 경기장에 물을 뿌린 일의 내막을 묻자 "우리는 규정을 지켰다"며 화제를 돌렸다. 박성일기자 sungil@sportsseoul.com


-월드컵 때 일화를 소개한다면.

부산에서 열린 한국의 조별리그 첫 경기 폴란드전을 앞두고 며칠 전 서울에서 부산행 비행기를 탔다. 기상상태가 안 좋아 착륙을 못했다. 서울과 수도권 관중의 접근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비상을 걸었고 철도 당국의 협조를 받아 특별열차편을 마련하는 등 준비를 해 차질이 없었다. 공직을 수행하면서 전에도 몇차례 그런 경험을 했지만 '큰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사전에 현장을 체크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거스 히딩크 당시 대표팀 감독의 요청으로 경기장에 물을 흠뻑 뿌리기도 했다던데.

물 뿌린 얘기는 하지 말자. 우리가 자꾸 그런 얘기를 하면 외국인들이 4강 진출의 의미를 달리 볼 수도 있지 않나. 당시 현장 지도자들의 조언에 따랐지만 매 경기마다 그런 건 아니다. 상대에 따라 마른 경기장이 나을 수도 있었고. FIFA의 경기 감독관이 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했고 우리는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미래, 서로를 존중하며 일을 즐겨라

-체육 행정을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체육은 국민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밝게 만든다. 규제가 아니라 업계의 자율적인 성장을 돕는 것이 체육행정의 핵심이다.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현장 사람들을 존중하고 이들을 편하게 해주는 서비스를 펼쳐야 한다. 특히 체육 행정가들은 좁아지면 안 된다. 시야가 넓어야 한다. 다른 분야의 장점과 자원, 인력을 흡수해 체육에 응용하고 체육에서 생긴 에너지를 전체로 확산하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후배 체육 행정가들은 자기 일을 좀 즐기면 좋겠다. 일을 사랑하면 문제는 거의 대부분 풀린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좋아하면 자기 인생도 행복해진다.

 

SNS를 적극 활용하는 등 새로운 흐름을 부지런하게 받아들이는 행정가로 알려진 배종신 이사장은 조직 관리의 비법으로 상하간 배려와 소통, 전문지식을 꼽았다. 박성일기자 sungil@sportsseoul.com


-페이스북 친구가 3200명에 이른다. SNS를 적극 활용하는 행정가로 유명하다.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에 있을 때 페이스북을 처음 시작했다. 당시 직원의 70% 정도가 인천시 공무원이었는데 업무 능력과 열의는 대단했지만 시각과 시야는 한정돼 있었다. 관련 분야 전문가나 시민의 이야기도 듣고 국제적인 이슈도 알아야 한다며 반강제적으로 페이스북에 가입시켰다. SNS는 잘못 쓰면 부작용도 있지만 잘 쓰면 그만한 행정 교재가 따로 없다.

-조직 관리 비법을 공개한다면.

윗사람에게는 "지금 아랫사람들은 당신의 과거다"라고 말한다. 아랫사람들에게는 "윗사람들은 당신의 미래다"라고 한다. 술자리에서는 서로를 안주 삼아 씹을 수도 있지만 결국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가치를 인정해야 조직은 물론 개인도 발전한다(배석한 김병용 홍보교류팀장에게 배 이사장에 대해 물었다. "실무에 능통한 체육 행정 전문가로 정확하고 날카로운 업무 판단을 한다. 성격도 직설적이고 화끈하다. 말단 직원의 이름과 고충까지 소상히 안다. 한마디로 배려와 소통의 리더십을 갖춘 체육 행정의 대부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류재규 부국장 jklyu@sportsseoul.com

◇배종신 이사장 프로필

생년월일 : 1952년 12월 8일 경남 통영 출생 학력 : 서울 혜화초~대광중~경기고~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서울대 행정대학원 수료 주요 경력 : 행정고시 21회(1978년)~문교부 행정사무관(서울대 관재과)~체육부 체육진흥국 체육시설과 사무관.국제경기과장.생활체육과장~문화관광부 체육기획과장.협력총괄과장~2002년 월드컵 기획조정국장~문화관광부 체육국장~한국예술종합학교 사무국장~문화관광부 차관보(문화행정혁신위원장).차관~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 사무총장~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2011년 1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