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선 교수를 고통 속으로 몰고 간 문제의 스위스 프라이(왼쪽)의 골 장면. 한국 골키퍼는 이운재. 당시 프라이는 분명히 오프 사이드 위치에 있었으나 볼이 한국 수비수 이호의 발을 맞고 넘어와 심판은 오프 사이드가 아닌 것으로 판정했다. 신 교수는 이 상황을 제대로 보고 해설했으나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오심으로 16강행이 좌절됐다'고 보도했다.하노버(독일) |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뎠나.
귀국 후 매일 우리 집에서 행주산성까지 한강변을 달렸다. 산도 참 많이 탔다. 몸이 피곤해야 잠이라도 자니까.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마음을 다잡았다.
-음악과 차는 뜻밖이다. 무슨 음악이 도움이 됐나.
집에 있는 1940년대산 진공관 오디오로 베토벤의 '운명'과 '영웅', 장사익의 '찔레꽃'을 미친 듯이 들었다. 내 마음을 음악으로 누르고 풀었다. 지쳐 쓰러졌다 눈을 떠보면 턴테이블이 혼자 돌 때가 많았다.
나폴레옹을 모티브로 한 '영웅'은 격정적인 선율이 지난 후에는 잔잔해진다. 귀까지 먼 상황에서도 작품을 써낸 베토벤의 인생은 또 어떻고. 장사익은 음악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닌 소리꾼이다. 설움을 풀어내는, 혼이 담긴 절창에 공감했다.
스페인 카탈루니아 출신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도 위안을 받았다. 카잘스가 백악관 공연 뒤 케네디 대통령에게 카탈루니아의 비극적인 역사를 설명하면서 "우리 동네의 새는 '피스(Peace), 피스'라고 운다"고 했다는데 깊이 공감했다.
음악과 축구는 격정 끝에 카타르시스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해설하면서 골에 환호하는 걸 보고 시청률을 의식한 쇼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아니다. 나도 고교 때까지는 전국 랭킹 1,2위를 다투던 골잡이였다. 골 순간의 격정에 감정이입이 왜 안 되겠나.
-다도에도 관심이 있었나.
다도인 사이에 우리 집의 다실이 꽤 알려져 있다. 차를 오래 마셨다. 언젠가 한중일 스타를 모아 차에 관해 책을 냈는데 내가 한국 대표 다인(茶人)으로 소개됐다. 찻잔 속에 우주가 있다고 하지 않나. 차를 마시며 얘기하면 사람과 사람, 자연, 우주간 나눔의 세계가 열린다. 차에는 마음을 다스리는 치료 기능이 있다. 내가 축구 감독들에게 차를 마시라고 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묶인 마음이 풀렸다고 느낀 건 일년 용돈을 털어 그림을 한 점 산 뒤다.
-그림까지?
대학 때부터 인사동을 헤매고 다녔다. 웬만한 전시회는 안 빼먹었다. 이중섭 권순철 김종학 이대원을 좋아했다. 극도로 괴로웠던 7년 전 축구인들은 거의 안 봤다. 문화인들을 만났다. 그 때 산 게 한국인의 얼굴과 혼을 그리는 재불화가 권순철의 그림이다. 그림의 그 험하고 일그러지고 거친 얼굴이 나를 닮았더라. 인생을 객관적으로 돌아봤다.
내가 처음부터 해설을 하려고 했나. 은퇴 후 공부를 더 하려다 미디어에 발을 들여 놓은 뒤 솔직히 인기에 취한 적도 있었고, 나락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그림을 들여다 보니 신기하게도 힐링이 됐다. 한국전쟁 중 부친을 잃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면서도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의 인생에도 공감이 됐고.
기업 특강 때 내 얘기의 70~80%가 음악이나 미술 등 문화다. 축구 얘기는 끝날 때 10분 정도 한다. 강의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문제의 오프사이드 사건이다. 그 분들이 나를 축구인으로 본다는 것 아니겠나. '그 일의 반향이 이렇게 컸구나' 생각한다.

신문선 교수(왼쪽)가 2006년 독일월드컵 개막 전 한국대표팀의 마무리 적응 훈련지였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훈련장에서 함께 해설을 한 황선홍 당시 전남 코치(현 포항 감독)와 함께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신 교수가 중도 귀국한 뒤 방송사는 황 감독으로 메인 해설자를 바꿨다.글래스고(영국) |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축구에서 받은 상처를 문화가 감싸줬다는 건데, 당시 사건이 결국 인생에 득이 됐다는 건가.
그건 아니고. 나는 특강으로만 밥 먹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고집통, 만년 야당, 쓴소리꾼, 정몽준 저격수 등 이미지를 갖고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서울체육고 시절 선생님들이 가장 강조한 게 스포츠맨십이었다. 프로선수로 세시즌을 뛰는 동안 한번도 퇴장당한 적이 없었다. 경고도 두차례가 전부였다. 부당해도 판정에 승복해야 한다는 철칙도 지켰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스페인전 때 이천수의 반칙에 대해 심하게 야단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쨌든 룰을 힘 세다고 맘대로 하지 말고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권력이나 떼거리의 공격에 상처를 입으면 문화적인 감성으로 치유를 받은 건 맞다.
-축구협회장 선거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정몽규 후보와 함께 '빅2'로 분류되는 허승표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안다. 허 후보의 장단점을 냉정히 평가한다면.
이번 선거가 세력 다툼이 아닌, 현재 한국축구의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의 전망을 공유하는 정책 토론의 장이 돼야 한다는 점을 먼저 밝히고 싶다.
허 후보에 대해 말하자면 가장 충실한 공약집에서도 드러났듯 축구철학이 분명하고 국내는 물론 세계축구의 현안과 비전에 대해 깊게 아는 적임자다. 내가 아는 축구선배 중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 인격적으로도 완성됐다. 두차례 경선을 치르면서 대의원들에게 자신의 장점과 진정성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기업도 성공적으로 경영했다. 경영 마인드와 조직 논리에 능통하고 개혁 의지도 강하다. 남의 얘기도 잘 듣는다. 조용히 축구인들을 돕는 등 덕도 충분히 쌓았다.
그러나 지난 선거 뒤 한국축구연구소 해체 과정에서 드러났듯 권력 의지와 초지일관하는 자세는 좀 약한 게 아니냐는 오해도 받고 있다. 연구소에 참여한 나를 비롯한 축구 지도자들은 한국축구의 비전을 찾기 위해 모인 것이지 축구야당, '허승표 모임'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충실한 논의 끝에 해체 결정이 났다면 내가 사재를 털어서라도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해체로 결과적으로 참여했던 사람 모두를 '허승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점은 아쉽다.

축구협회장 선거를 보는 신문선 교수의 시선은 냉정했다. 자신이 지지하는 허승표 후보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정몽규 후보의 장점도 거론했다.최재원기자 shine@sportsseoul.com
-정몽규 후보에게는 장점이 없나.
정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하면서 제시한 '산업적 측면에서 본 축구'라는 비전과 '국가대표팀 올인의 문제점'이라는 콘셉트는 잘 잡았다. 내가 늘 주장했던 한국축구 위기의 핵심 원인과 그 처방을 담고 있다.
축구산업은 크게 경기 자체, 미디어를 통한 정보 유통을 포함한 스포츠 서비스 산업, 스포츠용품 산업, 관람권 사업 등으로 구성된다. 한국축구는 심각한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중계방송 확대를 통한 축구의 상업적, 광고적 가치의 확대라는 화두도 좋다.
그러나 진정성과 실행 계획의 충실성은 물음표다. 국제축구연맹 부회장까지 지낸 정몽준 명예회장이 울산현대를 FC서울이나 수원삼성처럼 명문구단으로 키웠으면 축구인들이 그에게 과연 돌을 던졌을까.
그의 지원을 받는 정몽규 후보도 마찬가지다. 대우 로열스 시절 화려한 명성을 자랑했던 팀을 인수한 부산 아이파크를 경기의 질과 수익, 관중 유치 측면에서 건강한 팀으로 만들었나.
축구계 화합을 이룰 소통 마인드와 역량을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신 교수에 대해 '불의한 권력이나 제도에 저항하는 의인'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지난 총선과 대선 동안 양극단의 평가를 받은 '나꼼수'의 부정적인 측면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진영논리가 너무 강한 것 아닌가.
내게 최우선은 가족과 축구다. 내가 술 담배 잡기를 하나, 무슨 엉뚱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은 나더러 성직자 같다며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한다.
나는 국제상사에서 판촉부장으로 당시 거금인 연간 120억원의 예산을 원칙에 맞게 다뤘다. 최연소 축구협회 이사도 했다. 20년 넘게 신문과 방송에서 일했다. 기업의 생리와 조직 논리, 미디어의 속성도 알만큼 안다. 쓴소리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나. 내 전부인 축구가 더이상 망가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뿐이다.
허 후보에게 나처럼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도 드물다. 조광래 감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제가 있으면 누구에게도 지적을 한다. 허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잘못하면 내가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될 것이다.

인생에 대해 깊은 성찰을 했다는 신문선 교수가 인터뷰 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그는 소정 변관식 화가의 일화를 들며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비판자로 설정했다.최재원기자 shine@sportsseoul.com
-나꼼수 멤버 정봉주 전 의원이 "나꼼수의 유통기한은 끝났다. 성찰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신 교수도 그동안의 행보를 바꿔볼 마음은 없나.
당연히 성찰해야 한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유신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김지하 선생을 비롯해 민주당 원로였던 한화갑, 김경재씨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고 김덕룡, 윤여준씨 등 여권인사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축구계에도 그런 크로스 오버 바람이 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아니다. 원칙과 명분 없이 무작정 소신을 바꿀 수는 없지 않나.
축구협회 이사 시절 한홍기, 함흥철 선생 등 선배들이 축구인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으면 김우중, 최순영 축구협회장에게도 강하게 항의하는 것을 봤다. 자존심을 지킨 어른들이었다. 그러나 정몽준 회장 체제 이후 많은 축구인들이 권력의 시녀가 됐다는 자괴감이 든다. 볼을 먼저 찼다고 무조건 선배인가. 후배지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사회에 공헌하는 홍명보 감독을 나는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정묵법의 대가인 동양화가 소정 변관식 선생은 생전 정당한 평가를 못 받았다. 주변으로부터 "그림이 어둡다"는 얘기를 들으면 먹을 더욱 짙게 칠했다고 한다. 소정은 "내가 죽은 뒤 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데 과연 사후 그의 그림값이 폭등했다.
내가 소정처럼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정도를 갈 뿐이다.
류재규 부국장 jklyu@sportsseoul.com
◇신문선 교수 프로필
생년월일 : 1958년 3월 11일 경기도 안성 출생
학력 : 서울 송파초~서울체육중.고~연세대~연세대 대학원(체육학 석사)~세종대 대학원(스포츠경영학 박사)
선수경력 : 청소년 대표~실업팀 대우~프로팀 유공(3시즌 64경기 3골4도움)
주요 경력 : 국제상사 판촉부장~스포츠서울.MBC.SBS 해설위원(1988.1992.1996.2000.2004 올림픽, 1990.1994.1998.2002.2006 월드컵 등 500여회 중계)~대한축구협회.대한체육회.국민생활체육회 이사~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