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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사람-인터뷰

신문선 교수 "마이크 놓은 아픔, 권순철 화가 얼굴 그림 보며 삭였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 "마이크 놓은 아픔, 권순철 화가 얼굴 그림 보며 삭였다"
2013년 1월 11일 

이 분이 내가 알던 그 축구 해설가 맞나? 문화 해설가로 전업한 거 아닌가?

동장군의 기세가 한풀 꺾인 지난 8일 오전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신문선(55)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난 뒤 든 생각이었다. 질문 내용을 미리 받고 준비한 것처럼 속사포로 쏟아내는 열정적인 말투는 여전했지만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이순(耳順)으로 향하는 사람의 깊은 통찰이 곳곳에서 스며 나왔다.

인터뷰 후 점심 자리에서 "오늘 얘기를 세게 한 모양"이라는 또다른 동석자의 말에 신 교수는 "최근 들어 가장 격조높은 자리였다"고 농담하며 웃었다.

스포츠서울이 주말판으로 '데스크가 만난 사람' 코너를 신설한 것은 스포츠를 비롯한 각계의 주요 인사를 만나 현안에 대한 지혜를 구하는 한편 가슴 깊이 벼려온 인생철학을 독자와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축구계 인사 중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신 교수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현장 취재팀장이었던 기자는 신 교수가 20년이 넘는 해설가 일을 접은 결정적 계기가 된 스위스전 이후 그에게 마음 속 '빚'을 안고 살았다. 축구팬이라면 다 아는 '프라이의 골에 대한 오프사이드 논쟁과 그 이후'의 문제였다. 그동안 공.사석에서 더러 만났지만 7년이 다 돼 가는 세월 동안 그 '빚'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었다. 한두마디 말로 풀기에는 당시 기자와 미디어, 축구계가 신 교수 한 사람에게 떠넘긴 짐이 너무 가혹했다.

'축구대권전쟁'이라고 불리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 때문인지 모두가 몸을 사리는 판에 그가 인터뷰에 응할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신 교수는 역시 '신문선'다웠다. 취지를 설명했더니 "그래, 만나서 얘기하자"며 흔쾌히 응했다.

평소 신 교수가 겉으로 드러낸 언행의 뿌리를 파 보려면 7년 전 상처를 들출 수밖에 없었다. 당시 경기 상황, 이후 방송사를 비롯한 대다수 미디어와 축구협회, 축구팬의 일방적인 비난, 자신의 해설에 대한 국제축구계의 공인까지 신 교수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스위스전 후 "내 얘기를 듣고 제대로 좀 써달라"던 신 교수의 갈라진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진실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것이 참 미안했다.

그 날 이후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했다. 스위스전 후 방송사의 황당한 전화를 받고 고민 끝에 해설을 그만 하고 귀국하겠다고 얘기했다. '이게 운명이구나, 언젠가 좋은 모습으로 마이크를 놓아야지 하고 살았는데 손을 털 때가 됐구나'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그러나 귀국 후 공항에서 취재진의 첫 질문이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똑같이 해설할 거냐"는 가시돋힌 얘기였다.

아득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다행이다. 전문가로서 옳은 얘기를 하고 마무리할 수 있어서'라며 마음을 달랬다. 공항에 나왔던 쌍둥이 아들들로부터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라는 말을 듣고 힘을 얻었지만 한동안 마음은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