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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사람-인터뷰

권오갑 K리그 총재의 '부지런함'과 '나눔'의 경영철학

권오갑 K리그 총재의 '부지런함'과 '나눔'의 경영철학

2013년 5월 26일

한국프로축구연맹 권오갑 총재는 현대중공업그룹 내의 손꼽히는 축구 행정 전문가다. 덕장을 뜻하는 '재계의 유비'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프로축구 K리그와 현대오일뱅크라는 기업의 수장인 그가 강조하는 두가지 핵심 가치는 '부지런함'과 '나눔정신'이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단어나 그럴 듯한 문구를 기업문화나 경영철학으로 내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권 총재의 몸에 배 분리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된 두 가지 가치는 양극화 시대를 맞은 요즘 축구와 기업을 관통하는 '섬김과 기부'의 경영 원리로 새로 피어나고 있다.

500여년 안동 권씨 집성촌인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마을에서 부농의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권 총재는 아버지에게서는 '부지런함'과 '책임감'을, 어머니에게서는 '나눔'과 '베품'의 정신을 마음에 새겼다.

권 총재의 가족은 과수원과 논밭에서 일하는 일꾼 30여명의 아침식사와, 곧이어 찾아오는 걸인들의 끼니까지 챙기고 나서야 남은 밥과 반찬으로 식사를 했다. 권 총재도 6살 때부터 새벽 4시면 일어나 수발을 들었다. 늦잠을 자는 날이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린 마음에도 야속해 어머니에게 "진짜 아버지 맞느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아버지는 엄격했다. 새벽부터 수많은 식솔의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했던 어머니는 그에게 "사람에게 귀천은 없다. 걸인도, 장애인도 차별하지 말고 돕고 베풀어라"고 가르쳤다.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고 정주영 명예회장님이 뿌리내린 기업문화를 접하니 부모님의 가르침과 잘 어울렸다"는 권 총재는 "명예회장님도 '일을 시키는 사람이 더 부지런해야 한다'며 솔선수범하셨고, 현대건설 주식의 절반을 내놓아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어렵게 번 돈으로 회사 임직원은 물론 사회 전체의 어려운 사람을 보살핀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최근 K리그는 선수와 프런트의 기본급 1%를 축구사랑나눔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권 총재는 "축구도 이제 이만큼 성장하게 성원해준 팬과 이웃에게 보답해야 한다"며 "훌륭한 문화상품인 축구는 금전 외에도 봉사 기회와 방법이 더 다양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오일뱅크도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임직원 중 97%가 급여의 1%를 현대오일뱅크1%나눔재단에 출연하는 등 기부문화를 정착시켰다. 권 총재는 사장 전용 승용차를 직원들의 경조사에 쓰도록 했고, 전 사업장 금연을 선언했다. 계약직 폐지, 육아 지원을 위한 출산휴가 90일 추가 부여 등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환경을 조성했다. 보안요원과 청소 아주머니 등 회사의 음지 사람들도 꼼꼼히 챙겼다. 그러면서도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정유 부문 경쟁사 중 가장 좋은 실적을 올렸다.

유년기 몸에 밴 권 총재의 새벽 기상 습관은 지금도 그대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 신문을 본 뒤 집을 나서 6시부터 남산 순환길을 1시간 남짓 걷는다. 권 총재는 "명예회장님은 생전 서산 공장에 가실 때는 새벽 5시에, 울산 공장에 가실 때는 새벽 3시 30분에 출발했다고 한다. 요즘 나도 서산 공장에 갈 때는 5시에 출발하면 6시 30분에 도착해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며 웃었다.

다리를 다치기 전 그는 축구와 마라톤을 열심히 했다. 울산현대축구단 단장 시절 선수들에게 "내가 마라톤 풀코스를 뛸 테니 K리그 우승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매일 10km씩 한강변을 달렸고 마침내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 해 팀은 우승했다.

작년 어머니가 101세에 세상을 떠나자 권 총재는 회사에도 알리지 않고 고향 본가에서 73명의 직계가족만 모여 상을 치러 지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금요일 오후 퇴근한 그는 일요일에 발인을 한 뒤 월요일에 출근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사실 5년 전 형님께 말씀드려 동의를 얻었다"는 그는 "모두가 나같이 할 필요는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사회에 큰 일을 해 온 국민이 추도해야 하는 분이 있다. 형편이 어려워 품앗이로 경조사를 치러야 하는 사람도 있다. 회사 직원들에게도 동료의 경조사를 꼭 챙기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실업축구연맹 회장에 이어 프로축구연맹 총재라는 '공직'을 두 개나 맡게 됐지만 오래 전부터 권 총재는 은퇴 후 고향에서 '공직'인 이장을 맡아 봉사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축구계는 훗날 '금토마을 이장' 직함을 가진 전직 총재를 갖게 될까.

류재규 부국장 jkly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