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축구연맹 권오갑(62) 총재가 지난 1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권 총재는 지난 1월 21일 취임식에서 "임기 중 국민에게 사랑받는 프로축구, 관중석이 꽉 차는 프로축구를 만들겠다. 2등은 싫다. 1등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연세빌딩 21층의 현대오일뱅크 사장실에서 만난 권 총재는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100일이 지났는지도 몰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프로축구 개혁을 이끌어온 그에게서 향후 K리그가 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 120일을 넘겼다. 포부를 달성하기 위한 기초는 다졌다고 보나.
많은 시간을 축구 관련 일에 쏟고 있다. 구단 단장과 감독, 미디어, 심판, 경기감독관, 분과위원과 현직을 떠난 축구인들을 두루 만났다. 공통적인 대화의 주제는 '축구의 위기'였다. 낡은 관행을 없애고 새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매주 연맹 직원들과 함께 위기 극복 방안을 고민하고 매일 업무 보고를 받는다. 스토리를 발굴해 팬과 공유하는 일을 최근 시작했다.
-2월과 3월 대한축구협회 전무와 연맹 사무총장 선임, 지난달과 지난 14일 연맹과 축구협회의 조직 개편으로 한국 축구 행정의 큰 그림이 완성됐다. 연맹 행정의 핵심 과제는 무엇인가.
매시즌 많은 경기를 소화하는 연맹은 여기에 행정력이 집중돼 미래 준비에 소홀했다. 연맹은 물론 구단 사무국 종사자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일부 조직을 정비했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지원팀 신설이다. 구단 행정을 선진화해야 K리그 전체가 성장한다. 연맹은 때로는 주도적으로, 때로는 조력자로 역할을 할 것이다. 홍보와 마케팅을 분리해 두 분야의 전문성도 강화했다. K리그를 후원하는 기업을 최고로 대우해 스폰서 효과를 피부로 느끼도록 하겠다.
-연맹 임원에게 "임기가 2년이라고 생각해라. 성과를 내면 2년 더 일할 수 있다"고 했다고 들었다. 단기 성과에 목을 매는 부작용이 나오지 않을까.
그만큼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언제든 책임진다는 각오로 일하자는 것이다. 연맹은 팬과 구단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임원이라고 자리만 지키며 군림하거나 안일하게 움직이면 곤란하다. 저부터 임기가 2년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의 수장이 모두 '현대가' 출신으로 채워졌다. 협력은 잘 되겠지만 이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협회와 연맹의 관계는 어때야 한다고 보나.
지난 축구협회장 선거 때도 '현대가 어떻다'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기회에 이야기하고 싶다. K리그에는 전북현대, 울산현대, 부산아이파크 등 현대 관련 3개 구단이 있다. 울산대와 현대중.고도 축구팀을 운영한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낸 여자축구도 현대가 시작했다. 연간 축구에 600~700억원 가량을 쓰고, K리그 타이틀 스폰서도 3년째 하고 있다. 축구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없이 비판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제가 한국실업축구연맹 회장과 프로연맹 총재를 겸하고 있는데, 사실 어느 구단주도 피하려는 자리다. 저는 진심을 갖고 두세배 노력하고 있다.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최고의 리그인 K리그의 성공이 중요하다. 프로연맹은 오직 축구 발전이라는 한가지만 보고 달려갈 것이다. 어떤 의견이든 적극 반영하겠다. 밖에서 말로만 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축구는 이제 새 시대로 가야 한다. 더이상 편가르기를 할 시간이 없다.
-축구에 큰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사내 반발은 없나. 축구가 기업 경영에는 어떤 도움을 되나.
축구는 국기와 같은 종목이다. K리그 타이틀 스폰서를 통해 현대오일뱅크를 크게 알렸다. 현대오일뱅크 같은 스폰서 기업이 많아져야 축구가 성장하고 경제적 가치도 높아질 수 있다. 언론도 스폰서 기업을 자주 노출시켜 주기 바란다. 한편으로 현대오일뱅크는 K리그 후원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K리그가 30주년을 맞았다. 연맹은 비전 선포식, 공청회, 레전드 베스트11 선정, 기념 올스타전, 자선경기 등 행사를 기획했다. 30주년 행사의 핵심 콘셉트는 무엇인가. 30년 후 K리그의 미래를 그린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팬'이다. 30주년 행사 역시 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데 중점을 뒀다. 겉치레보다 실속을 강조했다. 30년 후 관중이 꽉 찬 경기장에서 선수와 관중이 함께 호흡하는 K리그의 열기를 상상해 본다.
-K리그 선수들의 연봉과 연맹 경영 내역을 공시했다. 팬은 잘했다고 하지만 일부 구단의 반발도 있다. 모기업이 축구단에 대한 투자를 줄일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경영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과 투명성이다. 연봉을 공개한 것은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의사 결정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맞추자는 의미였다. 관례에 가려져 있던 기본 원칙부터 차근차근 바로 세울 것이다. 불편해 하는 구단들도 큰 틀에서는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단과 더 소통하고 토론하겠다.
-올해 K리그 사상 첫 승강 플레이오프가 열리게 돼 있다. 그런데 승격 대상인 2부리그 챌린지의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특히 승격이 불가능한 경찰축구단이 1위를 독주하면서 승강제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승강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심한 점이 챌린지의 안정적 운영이었다. 그동안 승강제는 논의만 무성했지 실질이 없었다. 그대로 뒀으면 또 시간만 보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일단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었다. 챌린지 소속 구단들을 종합 점검하고 있다. 경찰축구단과 접촉해 연고지 문제 등 현안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쨌든 올시즌이 끝나면 1부리그 클래식의 13,14위 두 팀은 챌린지로 강등된다. 첫 해를 잘 마무리하면 내년부터 더 재미있는 승강제가 될 것이다.
-TV 중계는 K리그의 가장 큰 숙제이자 축구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문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방송사 입장에서는 야구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경기 중간 광고를 내보낼 수도 있고, 대중적 인기도 높다. 경기도 거의 매일 열린다. 중계 문제는 축구의 인기를 회복해야 해결된다. 인기가 높아지면 방송사도 중계하겠다고 달려들 것이다. 결국 축구팬으로 이야기가 돌아간다. 선수들은 팬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고민해야 한다. 방송 카메라 앞에 자주 서서 자신의 스토리가 팬의 머리 속에 남도록 이야기하고 직접 만나야 한다. 감독도 팬을 즐겁게 하는 축구를 해야 한다. 성적을 이유로 구단을 우물안 개구리로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곧 프로구단 감독들과 모여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한다. 이제 구단과 선수들이 모든 것을 열어야 한다.
-올해 프로야구 관중이 대폭 줄었다. K리그에는 기회일 수 있겠지만 제주와 경남을 뺀 구단의 관중은 크게 늘지 않았다.
축구가 야구와 단순 경쟁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야구는 야구대로, 축구는 축구대로 팬을 확보해야 한다. 야구팬이 줄었다고 축구팬이 그만큼 늘지는 않을 것이다.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는 국민이 축구를 보겠다고 마음먹도록 해야 한다. 모든 스포츠는 여가 활용의 개념에서 출발해야 하고 거기서 답을 찾아야 한다.
류재규 부국장 jklyu@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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