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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66)베어벡이 또 돌아보게 한 대표팀 소집규정

베어벡이 또 돌아보게 한 대표팀 소집규정

2007년 6월 19일



지난 2005년 1월 4일 차경복 전 성남 감독(지난해 작고· 당시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공동회장)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후 광화문에서 있었던 행사에서 모든 영광을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과 거스 히딩크 감독 둘이서만 누렸다. 정 회장이 한마디라도 축구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이런 영광이 있다고 했다면 서운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축구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지도자협의회가 축구협회와 한참 대립각을 세우던 당시 차 감독의 눈물은 다른 의미로도 읽혔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프로축구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해달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요구의 핵심은 대표팀 소집규정 개정이었다.


그해 말 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은 4명씩의 대표가 참석하는 ‘대표선수 소집규정 개정 소위원회’를 구성해 국제축구연맹(FIFA) 기준에 맞춰 규정을 현실화했다. 그해 5월 박주영(서울)의 세계청소년선수권 차출 파동 이후 프로연맹의 줄기찬 요구가 관철됐다. 이에 앞선 2003년 1월에는 축구협회 이사회가 10년만에 소집 규정을 개선했다. 최근 논란이 된 아시안컵 본선 관련 규정만 보면 당초 개막전 30일 전 소집이 가능했던 규정이 2003년에는 20일로 줄었고, 2005년에는 FIFA 규정과 같은 14일로 축소됐다.


이같은 변화는 단순히 축구협회(대표팀)와 프로연맹(프로구단)간의 힘의 이동을 드러내는 것만은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한 국가의 축구의 힘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대표팀의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표선수를 배출하는 프로축구의 정상적인 운영이 핵심전제라는 점을 양측이 인식한 결과이자, 대표팀을 장기소집하지 않아도 국제무대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한국축구의 성숙한 자신감의 반영이기도 했다. 굳이 정치에 비유하자면 한국축구는 2005년 12월 그 누구도 함부로 되돌릴 수 있는 절차적, 제도적인 민주주의의 틀을 어느 정도 갖췄다. 남은 과제는 이 제도에 어떻게 평등과 공동 가치 추구 등 실질적인 내용과 생기를 불어넣고 뿌리를 내릴 것인가로 모아진다.


최근 핌 베어벡 감독을 앞세운 아시안컵 본선을 앞두고 벌어진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의 갈등의 원인도 이미 갖춰진 제도의 미숙한 운용에서 찾을 수 있다. ‘관행’ ‘양보’ ‘강행’ ‘속셈’ 등 정체가 아리송한 단어를 내뱉으며 서로를 비난하고 저의를 의심하는 것은 아직 갈길이 먼 한국축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일이다. 밤 12시 이전에만 소집에 응하면 된다는 ‘관행’에 안주해 경기일정을 짠 프로연맹의 안일한 행정에, 아무 생각없이 경기(소집) 장소를 프로축구 경기 후 당일에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제주도로 정한 축구협회의 세심하지 못한 일처리가 일을 확대했다. 몇시까지 어디에서 소집에 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한 양측이 함께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다.


감정에 치우쳐 “이번에는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는 쪽이나, “굳이 제주도에서 소집에 응하라는 법이 어디 있나. 당일 밤 12시까지만 축구협회 사무실로 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어깃장을 놓는 쪽 모두 자신들을 한심하게 지켜보는 팬들의 싸늘한 시선을 한번쯤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