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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73)‘포스트 베어벡’ 논의의 전제 조건

‘포스트 베어벡’ 논의의 전제 조건

2007년 7월 26일



47년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기대했던 베어벡호가 25일 이라크와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졌다. 일본과 3~4위전이 남아 있다. 태극전사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실망한 팬의 마음을 다독일 책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당위론과는 별개로 축구팬의 관심은 핌 베어벡 감독의 거취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경질한다면 후임은 누가 될 것인가. 새 감독을 뽑는다면 어떤 원칙과 절차가 필요한가로 급격하게 쏠리고 있다. 특히 논의의 핵심 초점은 또 외국인 감독인가, 아니면 2000년말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 지휘봉을 쥔 이후 외국인들의 차지가 된 국가대표팀 감독직이 7년여만에 국내 감독에게 돌아올 것인가로 모아진다.


이같은 여론의 흐름과, 베어벡 감독이 자신의 거취를 연계시킨 4강진출에 성공했다는 결과 사이에서 대한축구협회 수뇌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기술위원회를 통해 이번 대회 전반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축구협회 수뇌부는 이미 베어벡 감독에게 올림픽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이같은 판단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한계를 드러낸 베어벡 감독의 지도력이지만 최근 정몽준 회장이 국제축구연맹(FIFA) 올림픽조직위원장으로 선임돼 내년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부 협회 관계자는 대표팀을 통한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감독의 인기가 너무 낮다는 현실적인 고민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런 고민은 표면적으로는 지난 15일 바레인과 조별리그 두번째 경기에서 1-2로 역전패해 8강행이 가물거릴 때부터 드러났지만 이미 지난해 10월 가나, 시리아를 상대로 졸전을 펼치면서 베어벡 감독에 대한 회의론이 일기 시작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6월 독일월드컵 직후 베어벡 감독을 선임하면서도 내포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축구협회는 베어벡 감독을 서둘러 딕 아드보카트 전 감독의 후임으로 발표하면서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 2006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연이어 보좌한 베어벡이 한국축구와 선수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라고 선임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월드컵 실패에 따라 악화된 여론을 봉합하기 위한 응급처방의 성격이 짙었다. 지금 한국축구가 겪고 있는 고통은 당시 성급한 결정의 당연한 결과라는 측면이 강하다.


축구 전문가들의 평가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베어벡 감독이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쥔 지 1년이 지나면서 지도력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줬다고 주장한다. 베어벡 감독 본인도 아시안컵 출정 직전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교사나 참모로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성적을 내는 승부사로서의 능력에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는 지적에 “솔직히 일정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표선수 소집을 둘러싸고 한국프로축구연맹 및 K리그 구단과 갈등을 빚고, 특정 선수에 대한 부적절한 비판으로 선수단의 신뢰에 금을 가게 한 그의 언행도 부정적인 평가에 일조했다.


2002년 월드컵 4강신화를 작성하면서 정점에 이른 한국축구는 FIFA 랭킹의 연이은 추락이 상징하는 것처럼 지난해 독일월드컵 16강 진출 실패, 이번 아시안컵에서의 졸전 등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 베이징올림픽이라는 또 하나의 중대한 전기를 맞았다. 부진의 원인은 여러가지겠지만 그 중심에 감독의 지도력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평가는 가장 빼어난 자질을 갖춘 선수들로 구성됐다는 세평에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프라와 시스템을 그런대로 갖췄고 선수들의 기량은 갈수록 향상되는데 이것을 제대로 엮어 전력을 극대화하는 지도자가 문제라는 것이다.


베어벡 감독에 대한 평가와 후임 감독 선임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도 바로 이 지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축구협회 수뇌부는 당장의 여론이나 눈앞에 닥친 올림픽 최종예선 일정을 들어 시간이 없다며 속전속결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선수와 마찬가지로 꾸준히 능력을 키우고 준비해온 국내 지도자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빠른 시일 안에 일을 처리하되 이번에는 좀 늦었지만 지난해 월드컵 이후 한국축구 전체의 시스템을 총정리하고 내년 올림픽을 통해 어떻게 하면 재도약할 수 있을까라는 더 큰 시각에서 논의를 했으면 한다. 그 검토와 결정의 대상에는, 중요한 고비마다 소임을 제대로 했는지를 의심받는 기술위원회도 포함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