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위, 책임 아니라 폐지 논의 필요하다
2008년 1월 22일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얘기를 한번 해 보자. 축구협회 정관 29조와 31조에 근거를 둔 기술위는 ‘축구기술과 관련된 제반 업무를 관장하는 주무기관으로서 국가대표급 지도자와 선수의 선발, 선수와 지도자의 양성, 기술분석 등을 통한 축구의 기술발전을 목적으로’ 설치됐다. 그러나 정관에 명시된 기술위의 임무는 축구협회가 지난해 10월 신설한 기술교육국(산하에 기술부 대표팀지원부 교육부가 있다)이 사실상 대신하고 있다.
형식상 기술위는 대표팀 감독과 선수 선발, 나아가 한국축구의 장기 발전계획과 비전을 세우는 막강한 권한과 역할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 기술위는 일반 축구팬이 생각하는 것처럼 각급 국가대표팀 감독을 해임하고 선임하는 기구에 다름 아니다. 핌 베어벡 감독 후임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기술위원장에 대한 책임론과 퇴진 여론이 일었던 것도 이같은 사정을 반영한다.
안된 일이지만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기술교육국장은 기술위의 위원이기도 하다. 상대팀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각급 대표팀 감독의 처지에서 보면 위원장에게 지원을 요청해야 할지, 기술교육국장에게 요청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빠지고 만다. 위원장에게 요청하면 기술교육국장을 거쳐 회신이 되돌아오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기술교육국이 생산한 생생한 정보가 한 단계를 거치면서 신선도를 잃고 만다. 기술교육국장에게 곧바로 요청하면 조직의 위계질서를 해치는 일이 된다. 해외 지도자를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기 위해 협상에 나서야 하는 대외협력국이 자료를 요청할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술위가 이런 자료를 보유할만큼 전문성을 갖췄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다. 기술위는 부여된 과제를 책임지기는 커녕 대표팀을 비롯한 축구협회 업무부서의 효율성을 해치는 조직이 되고 말았다.
기술위가 없으면 대표팀 감독 선임을 누가 할 것이냐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부회장 전무이사 사무총장 기술교육국장이 한시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하면 된다. 축구 선진국들은 다 그렇게 한다. 실제로 축구협회는 허정무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라인을 가동했고, 아예 새로운 조직을 만들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세계축구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은 주요 대회마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기술연구그룹(TSG)을 구성하면 되고, 장기비전을 세우는 일은 기획실 등의 역할을 강화하면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기술위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만약 ‘옥상옥‘ 조직인 기술위가 없으면 대표팀 감독 선임과 각종 대회 성적에 따른 책임을 회장 부회장 전무 등이 고스란히 져야 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농담이 축구협회 내부에서도 나오는 판이다. 거수기이자 보호막이 사라지면 되겠느냐는 뜻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현행 18부 4처 18청 10위원회의 정부조직을 13부 2처 17청 5위원회로 줄이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21일 국회에 제출했다. 몇개 부처를 통폐합하고 400개가 넘는 각종 위원회도 절반 가까이 줄인다고 한다. 논란이 있지만 ‘슬림화, 효율화’라는 큰 방향에는 여야가 따로 없이 동의한다. 새삼스럽게 기술위를 비판하거나 특정인을 경질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제 축구협회도 기술위의 존폐를 비롯한 조직의 효율성을 따져볼 때가 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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