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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37)1998년 프로축구 트로이카의 '가을 풍경'

1998년 프로축구 트로이카의 '가을 풍경'

2006년 10월 31일



1998년 프로축구계는 ‘라이언킹’ 이동국(27),  ‘테리우스’ 안정환(30),  ‘앙팡테리블’ 고종수(28) ‘트로이카’가 내뿜는 열기로 뜨거웠다. 이동국과 안정환은 포항과 부산대우를 통해 프로무대에 입문한 새내기였고 1996년 수원삼성의 창단멤버였던 고종수는 프로 3년차였다.


박주영이 한국축구의 우상으로 떠오른 지난해 상황을 빗대 말하자면 10개 프로팀이 각축하던 당시 ‘3명의 박주영’이 관중몰이를 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참패 뒤 오히려 타오른 프로축구붐 속에 그들이 가는 곳마다 ‘오빠부대’가 등장했다. 수원 김호, 부산 이차만, 포항 박성화 감독은 이들의 장점과 스타성을 극대화하는 경기 운용을 했다. 대형 월드컵경기장이 없던 시절 고종수와 안정환이 출전한 8월 22일 수원-부산전에는 3만 1987명의 관중이 입장했고 이동국과 안정환이 맞대결한 포항-부산전은 2만 6115명이 관전했다. 3명이 모두 뛴 8월 16일 올스타전에는 6만 1840명이 잠실벌에 운집했다.


고종수가 MVP에 오른 가운데 신인왕 경쟁에서는 월드컵 후광을 입은 이동국이 안정환을 제쳤다. 연말 부산이 “이동국보다 1원이라도 더 받겠다”고 버티는 안정환의 연봉을 먼저 발표하고 포항이 더 많은 액수를 책정해 이동국이 또 이겼다. 해외진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안정환이 2000년 이탈리아 세리에A에 진출해 ‘빅리거’가 되자 이동국이 2001년 독일 분데스리가로 날아갔고, 고종수는 2004년 일본 J리그로 떠났다. 1998년 월드컵이 이동국과 고종수의 무대였다면 2002, 2006년 월드컵은 두 대회 연속골을 기록한 안정환의 것이었다.


‘트로이카 체제’ 구축 뒤 10년을 맞는 내년을 코 앞에 둔 현재 이들의 상황은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제각각이다. 부상으로 독일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이동국이 지난달 29일 수원전을 통해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안정환은 ‘무적선수’로 7번째 팀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전남과 재계약에 실패한 고종수는 경기도 청평에서 산악훈련으로 몸을 만들다 최근 서울로 옮겨 재기의 칼날을 갈고 있다.


최근 10년간 한국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들은 1990년대말 이후 한국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냉정한 평가도 뒤따른다. 타고난 기량에 비해 노력이 부족하고, 황선홍 홍명보 이운재 김남일의 카리스마와 안정감, 박지성 설기현 이영표가 주는 신뢰감이 적다는 시각이 있다. 개인사를 떠나 적어도 축구의 영역에서는,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장한 야생화라기보다는 향기와 빼어난 자태는 있지만 온실에서 자란 관상수처럼 내성이 모자란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본인들은 온몸으로 최선을 다해 한국축구의 격변기를 살아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 말이 맞다. 그러나 당장 올 가을 이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다. 10년 후의 가을은 어떨까. 그 때 다가올 겨울에 대한 스산한 근심에 떨까, 결실의 기쁨을 노래할까. 초심의 회복 여부, 몇년 남지 않은 현역 생활 동안 흘릴 땀방울이 그 답을 대신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