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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34)이운재 제외는 한국축구 패러다임 변화 신호탄

이운재 제외는 한국축구 패러다임 변화 신호탄

2006년 10월 10일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때부터 한국축구대표팀 부동의 수문장으로 활동해왔던 이운재(33·수원삼성)가 베어벡호 3기 예비 멤버에 포함됐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빠졌다. 이운재는 “내가 못 해서 탈락한 것이니 섭섭할 것도 없다. 앞으로 더욱 잘 하겠다”며 재도전 의지를 보였다. 베어벡 감독도 “이운재가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 경기 감각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이번 조치가 ‘일시적인 것’임을 드러냈다.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이운재는 아직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이고 언젠가 다시 부름을 받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남아공월드컵이 열리는 2010년 이운재의 나이는 만 37세가 된다. ‘태극 장갑’이 나이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이운재가 4년 뒤에도 다시 뛰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하는 대표팀의 상황에서도 그렇다. 이운재의 제외는 2006년 일월드컵 뒤 이어진 최진철 이을용 등의 태극 유니폼 반납과 큰 의미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이 일은 대표팀의 생물학적인 세대 교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대표선수들을 통해 드러나는 한국의 축구문화의 변화라는 차원에서 살펴볼 때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멀리 보면 월드컵은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이 현장을 떠나 ‘신화’의 영역으로 물러서는 분기점이기도 했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는 최순호 황보관 변병주의 마지막 무대였고 1994년 미국대회 뒤에는 최인영 김판근 구상범이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1998년 프랑스대회 뒤에는 하석주 최영일이 은퇴했다. 2002년에는 황선홍 홍명보 김태영 등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크게 보면 한국의 축구문화는 2002년을 기점으로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를 구분할 수 있다. 2002년 이후 불과 4년이 흘렀지만 이 세대 안에도 의식의 단층현상을 살필 수 있다. 황선홍 홍명보 김태영이 이전 세대의 강력한 사명감과 애국심에다 세계축구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더해 선수의 권익에 눈 뜨고 이를 현실로 옮기려고 시도한 세대라면, 독일월드컵 직전 “이제는 우리가 상대를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우리를 두려워 한다” “손이 안 되면 얼굴로라도 막겠다”던 이운재는 이들의 계승자이자 다음 세대의 징검다리 노릇을 했다.


1998년 데뷔해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안정환 이동국 고종수라는 ‘낀세대 샐러리맨 스타일’을 거쳐 ‘나이트 가고 싶은 남자’ 김남일이 등장했고, 그 뒤를 ‘튀는 신세대’ 이천수가 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일 가나전에서 선을 보인 도하 아시안게임 멤버, 즉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대표팀 출신 선수들이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은퇴를 앞두고 소줏잔을 나누며 “우리끼리는 대표팀 감독 자리를 두고 싸우지 말자”고 다짐했다는 황선홍과 홍명보는 현역 시절 ‘국가대표의 자존심’과 ‘프로다운 자세’를 강조했다. 팬에게 다소 경직됐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당위론적인 입장에 섰던 이들이 주장했던 ‘즐기는 축구’는 마침내 ‘박성화 사단’의 몸에 구현됐다.


가나전에서 긴장 때문에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이들의 굳은 몸이 풀리는 날, 한국축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과 행동양식을 포함한 틀로 진화할 것이 틀림없다. 이운재의 ‘대표팀 제외’에 주목하는 것은 그 ‘사건’이 안고 있는 상징성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