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야기(2015년 4월 11일)
불암산에 산불이 난 지 한 달이 막 넘었습니다. 온 산에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산불 현장도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불암산 아래 주말농장 텃밭에서 일을 한 뒤 늦은 오후 막내아들과 함께 산불 현장을 찾았습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하는 상황. 마음이 급한 상황에서 지난 주 관찰대상으로 정한 뒤 사진을 찍어두었던 도토리들을 찾았습니다. 산을 오를 때만 해도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군요.
한참을 헤맨 끝에 드디어 가장 피해가 심했던 도토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땅에 박혀 있던 뿌리와 도토리를 연결했던 검은 색 윗 부분이 끊어져 있더군요. 화재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새 싹을 틔우지 못했습니다.
희망을 걸었던 도토리의 불에 탄 뿌리가 끊어져 버렸다. 안타깝게도 싹을 틔우지 못했다. 2015.4.11 류재규기자
다른 도토리는 어떨까 하면서 주위를 돌아보고 있는데 막내가 "발견~!"이라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얼른 다가가 보니 하늘을 향해 물구나무를 선 도토리에서 놀랍게도 싹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연한 연두색 싹과, 그 싹을 감싼 솜털이 사랑스럽고 대견했습니다.
올 봄 불암산에서 본 도토리 중 처음으로 싹을 틔운 이 놈을 집중 관찰대상으로 정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볼 수 없었던 놈입니다. 일단 '1번'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싹이 나오는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제 예상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저는 도토리가 갈라지면서 그 속에서 싹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마치 콩나물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도토리는 땅에 박힌 뿌리의 일부에서 움이 트고 그것이 자라 싹이 되고 줄기로 성장한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도토리는 새 싹이 자라는 동안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요.
하늘을 향해 거꾸로 선 도토리 왼쪽으로 연두색 싹이 나오고 있다. 2015.4.11 류재규기자
지난 주에 사진을 찍었던, 반쯤 탔던 두번째 도토리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포기를 하고 세번째 도토리가 있던 곳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일주일 사이에 주변 환경을 변했지만 도토리의 모양은 그대로였습니다. 뿌리가 땅 속으로 더 깊이 박혔을 테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부터 이 놈의 이름은 '2번'입니다.
지난 주 살펴봤던 세번째 도토리. 도토리가 좀 마른 것 외에 겉모습은 큰 차이가 없다. 2015.4.11 류재규기자
네번째 도토리 역시 외관상으로는 지난 주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도토리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옆에 무슨 표시라도 해둘까 생각했지만 접었습니다. 산에 인위적인 작업을 하는 것도 그렇고, 위치가 등산로 옆에 있어 사람들의 손을 탈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3번'으로 이름을 정했습니다.
가운데 껍질이 약간 갈라진 것 외에 큰 변화가 없다. 2015.4.11 류재규기자
주변을 돌아다니며 뿌리를 내린 도토리를 찾던 막내가 또다시 "발견~!"이라고 외칩니다. 지난 주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놈인데 도토리의 모양과 뿌리의 굵기도 크게 달랐습니다. 모양만으로 보면 신갈나무가 아닌가 싶지만 역시 확실한 건 싹이 나봐야 알 듯 합니다. '4번'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신갈나무 도토리로 보이는 '4번'. 모양이 독특해 관찰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2015.4.11 류재규기자
봄기운이 강해지면서 산이 초록색으로 물들어 갈수록 산불의 상처도 선명하게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산불 현장을 멀리, 그리고 가까이 잡아봤습니다.
멀리 텃밭에서 본 산불현장. 두 바위 사이 희끄무레해 보이는 곳이다. 주변 나무와 색이 다르다. 2015.4.11 류재규기자
산불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피해 정도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어떻게든 살아나겠지 싶었던 나무들 중 움을 터뜨리지 못하는 것들이 여럿 보입니다. 지난해 낙엽을 아직 달고 있는 나무도 고사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뿌리 부근에서 새로운 싹이라도 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가까이서 본 산불 피해 현장. 2015.4.11 류재규기자
밑둥이 탄 나무들도 지난 주와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겉껍질인 코르크 부분에 윤기가 있습니다. 아직은 생존에 대한 희망을 가질 만 합니다.
밑둥이 반쯤 탄 나무. 겉모습은 지난 주에 비해 큰 변화가 없다. 2015.4.11 류재규기자
또다른 나무의 모습입니다. 역시 희망을 걸고 싶습니다. 그러나 텃밭 사장님은 "산불 피해를 입은 큰 나무들 중 잎을 내더라도 결국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십니다. 안타깝지만 지켜보며 응원할 뿐입니다.
산불 피해 흔적이 선명한 참나무. 2015.4.11 류재규기자
너무 칙칙한 모습만 보여드렸습니다. 힘이 나는 사진 한 장을 올립니다. 참나무는 아니지만 지난 주에 비해 두 배 가량 자란 초록색 새순이 싱그럽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산을 내려오니 그나마 막혔던 마음이 풀립니다.
화마를 이기고 올라온 새 순. 지난 주에 비해 서너배는 더 자랐다. 2015.4.11 류재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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