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 참나무 분투기](5)불사거목(不死巨木), 마침내 신록을 내뿜다

2015년 5월 4일

지난 3월 13일 불암산에 산불이 났으니 5월 4일은 날수로 53일째입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더니 거목도 불사였습니다. 처음 산불 현장을 찾았을 때만 해도 의심스러웠던 큰 참나무들이 화재의 상처를 이겨내고 마침내 싱그러운 신록의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참나무들이 움을 틔운 건 2주쯤 전이었을 겁니다. 너무 높은 곳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이라 포착하기 어려웠을 뿐이었죠. 지난 4일 찾은 현장에서 참나무들은 초록빛 싹을 활짝 틔운 채 그동안 안타깝게 지켜보던 관찰자를 안심시키더군요.

휴대폰으로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다가 셀카 모드로 바꾼 뒤 방향을 바닥에서 하늘을 향하도록 했는데요. 결과는 성공입니다. 아래 사진처럼 20여미터는 족히 되는 참나무의 산불 피해 영향과 우람한 둥치, 그리고 푸른 하늘을 수놓은 초록색 잎까지 모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다른 방향에서 같은 나무를 찍은 사진입니다. 별다른 촬영 기법을 쓴 것도 아닌데, 화재 흔적이 강조되고 나뭇잎은 상대적으로 무성해 보입니다. 사실 이 쪽 부분이 더 많이 타긴 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에 들어오는 빛의 영향으로 실제보다 검은 색이 더 진해진 듯 합니다.

옆에 있던 또다른 나무의 모습입니다. 원래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갔는데 휴대폰의 위치를 최대한 낮췄지만 뿌리 부분까지 잡기는 어려웠습니다.

아래 사진은 위 참나무의 아랫 부분을 따로 찍은 것입니다. 두 둥치를 자세히 살피면 아랫쪽에서 바람을 타고 올라왔던 불에 검게 탄 왼쪽과 비교적 피해를 덜 입은 오른쪽 부분의 경계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 네 장의 사진만으로도 화재 현장에서 분투하는 참나무의 갱생 의지를 모두 전해드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암산에는 이런 거목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나무가 타거나 말라죽은 수령 3~4년짜리 어린 참나무들도 새 줄기를 내면서 또다른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진 몇 장을 싣습니다.

지난 주 사진과 비교해 보면 성장 속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나무의 전체 모습을 담으려 하다 보니 피사체와 휴대폰의 거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참나무 외에도 화마를 이기고 새 줄기는 내는 식물은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아 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초록 줄기를 낸 진달래 세 그루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이번 주에는 초점이 큰 참나무로 옮겨갔지만 지난 3주간 관찰했던 도토리 소식도 전합니다.

생육 조건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쑥쑥 성장하고 있습니다. 제법 센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굳건하게 뿌리를 의지하며 버티는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피사체의 측면을 찍었던 지난 주와 달리 이번엔 위에서 아래로 방향을 잡다 보니 도토리의 실제 성장 과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새 싹에 매달려 있는 도토리의 모양과 색깔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도토리의 크기가 쪼그라들었습니다. 보라색 또는 연노랑, 청색에 가깝던 원래 색도 흐려졌습니다. 도토리에 있던 영양이 새 싹으로 거의 옮겨진 데다 뿌리가 제 기능을 하면서, 도토리에서 참나무로 변해가는 과정인 듯 합니다.

그동안 눈에 익었던 놈들의 사진들입니다.

이제 불암산 산불 현장에서 싹을 낸 도토리를 찾는 건 흔한 일이 됐습니다. 이런 일이 대부분의 봄 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지, 아니면 산불 피해로 인해 환경이 달라지면서 이 곳에서만 두드러진 것인지는 더 알아봐야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런 상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1㎡ 가량 공간에서 무더기로 싹을 내고 자라는 도토리들의 모습입니다. 어림잡아도 10포기는 되는 것 같습니다. 모두 정상적으로 자라난다면 내년쯤에는 이 놈들끼리 영역 다툼이나 생존 경쟁을 벌일 판입니다.

'죽음의 땅'이라고 여겼던 산불 현장이 이제 약동하는 '새 생명의 땅'이 된 것 같다고 하면 지나친 이야기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