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이야기(2015년 4월 17일)
4월 들어서만 몇차례나 봄비 선물을 받은 불암산 산불 피해 지역이 생명의 약동에 휩싸여 있습니다. 몇주째 꼬박꼬박 동행해주는 아이의 말마따나 그야말로 '대박'입니다. 눈 앞에 펼쳐진 모습에 놀랍고 신기해 하기는 저나 아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의 입에서는 "와~ 대박"이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고, 휴대폰 카메라 버튼은 누르는 저의 가슴도 쿵쾅거렸습니다.
지난 주 두번째 소식을 전하면서, 새 싹을 낸 도토리 하나를 발견하고 우리 부자가 얼마나 대견하고 반가워했는지 독자 여러분은 기억하실 겁니다. 이번 주,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지난 주 금요일 찾은 산불 현장에는 이미 싹이 터 자란 참나무가 곳곳에 널려 있었는데 일주일 전에는 왜 못 봤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사진 중 가장 돋보였던 사진을 먼저 올립니다.
도토리에서 터져나온 움이 어린 나무의 모양을 제대로 갖췄다. 갈라진 도토리가 진한 자주색으로 변한 것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자줏빛이 선명한 도토리의 색깔과 곧게 뻗은 줄기, 그리고 하늘과 땅을 향해 팔을 벌린 듯한 잎의 모양을 보노라면 숭고하고 강력한, 그리고 아름다운 생명의 의지와 조화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뭔가 쉽게 범할 수 없는 기개와 품위도 느껴지고요.
아래 사진은 일주일 전 처음으로 새 싹을 틔웠던(그렇다고 생각한) 도토리의 현재 모습입니다. 생육 조건에 차이는 있겠지만 이 도토리의 싹이 일주일만에 이 정도밖에 안 자랐을 정도라면 지난 주 다른 도토리가 싹을 틔우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 때는 저나 아이의 눈에 뭐가 씌었던 듯 합니다.
일주일 전 유일하게 새싹 봤던 도토리. 일 주일 전에 비해 새 싹의 길이와 굵기가 달라졌지만 언뜻 봐서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좁은 지역에서 두 개 이상의 도토리가 한꺼번에 싹을 낸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나씩 감상해 보시죠.
하나하나가 모두 경이로움을 자아냈지만, 쌍으로 난 싹 중에서는 아래 사진의 도토리들에 가장 마음이 끌렸습니다.
막 햇빛을 본 듯한 도토리 싹. 특히 오른쪽의 앙증맞은 싹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절로 사랑으로 가득차게 만든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또 다른 두 개의 도토리가 경쟁하듯 싹을 내고 있습니다. 반쯤 갈라진 도토리의 색깔이 진한 황갈색입니다.
도토리 두 개가 연이어 싹을 내고 있다. 선명한 색은 눈을 사로잡고 가볍게 고개를 숙인 사랑스러운 모습은 마음을 흔든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산비탈에 비스듬이 자리잡은 도토리 싹들입니다. 다른 것과 달리 두 개 다 겉껍질을 온전히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특히 아래 도토리 껍질에는 불에 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애처러우면서도 대견스럽습니다.
싹이 제법 자랐지만 도토리 껍질은 덮여 있다.위 도토리 잎에는 줄무늬가 선명하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역시 나란히 자리잡은 줄기입니다. 처음엔 두 개의 도토리에서 제각각 나온 싹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아래의 싹은 위에 보이는 도토리와 줄기로 연결돼 있습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아래 싹에도 연결된 도토리가 따로 있는지, 아니면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두 개인 듯 한 개인 듯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싹이 두 개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껍질이 갓 벗겨진 듯 도토리 속살이 본래 색인 연한 노란색을 간직하고 있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지켜본 것 중 가장 넓은 잎을 매단 싹입니다. 성장 속도가 빨라 올해 나온 건지, 아니면 또다른 큰 줄기에서 나온 곁가지인지 확인해 보려고 낙엽을 살살 헤쳐보니 영락없이 도토리가 나왔습니다. 사진을 찍고 곧 원래 모양으로 덮어줬습니다.
낙엽 속에 묻힌 도토리 겉껍질이 검은 색으로 변해 있다. 흰색 곰팡이도 보인다. 산불 피해 때문인지, 습기 속에서 썩어가는 과정인지 알 수 없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다시 하나씩 솟아난 도토리 사진으로 돌아갑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도토리가 새 싹에 영양을 공급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얼핏 보면 싹이 도토리에서 곧바로 나온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갈라진 도토리에서 뻗어나온 두 개의 고리가 뿌리와 연결돼 있는 구조가 명확하게 보입니다.
발아 과정에서 도토리와 싹, 뿌리가 각각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표본이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아래 사진을 보면 참나무의 강한 생명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도토리를 자세히 보면 상처투성이입니다. 껍질과 속살 일부가 불에 탔고, 벌레에 파먹힌 흔적도 보입니다. 일단 땅에 뿌리를 박고 싹을 틔웠으니 제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도토리와 싹. 혹시 아래 보이는 도토리와 연결됐나 자세히 살펴 봤지만 싹은 위 도토리에서 난 것이 분명했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아직 완전하게 싹을 내지 못한 도토리도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열결해서 보면 도토리의 발아과정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새 싹이 도토리 속에서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도토리 종류마다 싹을 틔우는 방식이 다른 것인지, 아니면 제가 혹시 잘못 관찰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주 볼 때는 분명히 새 싹이 도토리 자체가 아닌, 땅으로 뻗은 뿌리 줄기에서 나왔습니다. 도토리가 두 개로 확실하게 갈라진 위 사진을 봐도 이 결론이 맞을 듯 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전문가를 만나면 의견을 들어보고 결과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도토리. 역시 껍질에 산불의 흔적을 갖고 있습니다. 잦은 비와 높아진 기온에 힘입어 여기서도 며칠 후면 싹이 날 것이 분명합니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예상치 못했던 봄 향연을 보니 한 도토리의 성장 과정을 일주일 간격으로 추적해 보겠다는 계획을 변경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화가 심한 봄철까지는 다양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식생이 좀 안정되면 가장 상징적인 하나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사진 하나를 더 붙입니다. 아이가 참나무가 아닌 다른 종류의 나무 옆에 뿌리를 박은 도토리는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해 일단 사진을 찍어뒀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만, 아이의 청이 그러하니 살펴 보려고 합니다.
2015년 4월 17일. 불암산. 류재규기자
PS : 아이와 함께 불암산을 찾았던 4월 17일이 세월호 참사 1주년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산불 피해를 입은 도토리가 어떻게 싹을 내고 성장해 결국 산 전체를 되살리는지 살펴보겠다고 한 데는 내심 이런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도토리의 눈물겨운 분투가 더 대견스럽고 사랑스럽게 느껴진 것에는 이런 마음도 있었고요.
슬픈 일이지만 세월호 희생자들이 우리 곁에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야 할만큼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잘 모르는 저 도토리와 그 싹의 이름을 반드시 찾아 불러줘야 하듯이, 아이들이 왜 이런 희생을 당해야 했는지 정확한 진실을 확인하고,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 책무가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부디 그런 날이 속히 오기 바랍니다.
언제까지 이 글을 이어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분노, 아픔, 슬픔, 미안함, 안타까움 등 온갖 종류의 가슴앓이를 하는 분들께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면 좋겠습니다. 류재규기자 jklyu@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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