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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171)요동치는 한중일 축구판도, 한국이 갈 길은?

(171)요동치는 한중일 축구판도, 한국이 갈 길은?

2016년 2월 15일

[스포츠서울 류재규 기자]동북아 축구의 세 강자인 한국과 중국, 일본의 축구판도가 요동치면서 한국축구계에도 새로운 현실에 대한 인식과 전략,실천이 요구되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동북아를 넘어 아시아 축구의 맹주로 군림했다. 한국의 독주 속에 일본과 중국이 뒤를 잇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21세기, 특히 2010년대 들어 한중일 축구는 각급 대표팀의 전력, 프로리그의 가치, 국제축구무대에서의 영향력 면에서 우열을 점치기 어려운 대등한 수준으로 변했고 일부 영역에서는 역전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급변하는 동북아 축구지형을 각급 대표팀, 프로리그, 축구외교력 측면에서 살펴보고 한국축구의 대응과제를 짚어본다.



◇대표팀 : 일본의 ‘이기는 축구’와 중국의 ‘희미해진 공한증’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축구는 국가대표팀간 경기인 A매치에서 일본과 중국을 한 수 아래로 취급했다.

기본기에 충실한 일본대표팀의 세밀하고 아름다운 경기를 내심 부러워하면서도 ‘모양만 낼 뿐 승리와는 거리가 먼 교과서 축구’라며 낯춰 봤고, ‘중국에는 결코 지지 않는다’는 우월감 속에 대륙의 ‘공한증(恐韓症)’을 즐겼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한 2002년 월드컵에서도 한국은 4강에 오른 반면 일본은 16강에 그쳤고, 중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을 이같은 동북아 축구 판도를 보여주는 거울로 인식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동북아 축구는 큰 변화에 휩싸였다.

김신욱이 2013년 7월 2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일본과 동아시안컵 경기에서 일본선수들과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일본은 전통적 기술축구에 유럽축구의 힘과 스피드를 더해 승부에도 강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성인대표팀간 역대 전적에서는 40승23무14패로 앞서 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전적에서는 4승7무4패로 대등해졌고, 특히 2010년 10월 12일 친선경기 이후 5차례 맞대결에서는 3무2패로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올림픽대표팀간 경기에서도 3승4무3패(전체 전적 6승4무5패)로 승패를 주고받았다. 특히 지난달 30일 카타르 도하에서 벌어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에서 당한 뼈아픈 2-3 역전패가 이같은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과 중국간 성인대표팀 전적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2000년 이후 5승4무1패(전체 17승12무1패)로 기록상으로는 여전히 중국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3차례 대결에서는 1승1무1패로 호각세를 보였다. 올림픽대표팀간 경기 양상도 비슷하다. 전체 전적에서는 10승3무1패를 기록했지만 2012년 12월 8일 친선경기 이후로는 1승2무1패로 쉽게 이기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국 일본 중국 순으로 배열됐던 한중일 대표팀의 전력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 이런 추세가 가속화돼 3국간 전력이 언제 역배열으로 바뀔지 안심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프로축구:굳어지는 한중일리그의 역전현상

한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프로리그에서도 아시아 축구의 종주국을 자처했다. 한국이 1983년 아시아 최초로 프로리그(K리그)를 출범시킨 10년 뒤인 1993년 일본이 J리그 시대를 열었고, 중국은 그 이듬해인 1994년 갑급A조(2004년 1부리그를 슈퍼리그로 개칭)라는 이름으로 프로화를 이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J리그가 노정윤을 필두로 고정운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박지성 안정환 등 국내 스타 플레이어와 유망주를 휩쓸어갈 때도 한국 축구계는 ‘엔화의 위력’에 불편해 하면서도 ‘태극전사의 열도 평정’에 환호했다. 일본이 실업축구리그 격인 JFL을 토대로 1988년부터 ‘일본축구리그(JSL) 활성회’를 설립하고 유럽 빅리그 벤치마킹 등 치밀한 준비와 장기 비전 속에 1999년에 이르면 선진국형 클럽 시스템을 구축한 사실은 애써 무시하거나 곁눈으로만 봤다.

슈퍼리그가 거대 인구와 저변을 바탕으로 출범할 때도 엄청난 규모와 열기에는 감탄했지만 ‘중국은 2002년을 빼고는 한번도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지 못했다’거나 ‘슈퍼리그는 승부조작 등 부정부패로 가득찬 리그’라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광저우 헝다 팬들이 지난해 5월 21일 FC서울-광저우간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벌어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세계를 향한 의지를 드러내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응원하고 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한중일 톱리그의 평균 관중은 중국 일본 한국의 순으로 역전된지 오래다. 특히 부패를 청산한 슈퍼리그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천문학적 돈과 국가적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적 선수와 지도자 영입경쟁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유럽 빅리그를 제치는 광경은 놀랍다. 유소년클럽 2만개 설립, 월드컵 등 국제대회 유치 및 상위 입상이라는 목표가 현실화되면 ‘쿵푸팬더’는 명실공히 세계축구의 중심에 선다.

AFC 챔피언스리그 성적도 출렁이고 있다. 대회 방식 개편 초창기인 2003년부터 2012년까지는 한국의 우위 속에 일본과 중동팀이 우승 트로피를 나눠가졌다. 그러나 2013년 이후 최근 3시즌 동안 슈퍼리그의 광저우 헝다가 2차례나 우승했다. 2008년 감바 오사카 우승 후 주춤했던 J리그도 최근 4강권을 넘나들며 꾸준히 정상을 노리고 있다.

◇국제축구 영향력:중국의 강력한 흡인력, 일본의 성큼성큼 발걸음

자국 내 축구 행정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과 일본의 국제무대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 운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유럽 빅리그는 여전히 세계축구의 큰 산이다. 첨단 인프라 위에 축구의 주요자원인 사람과 돈이 몰리고 유통되는 최대 시장이다. 그러나 이 흐름이 영원할 수는 없다. 14~16세기 르네상스의 물결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됐으나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거쳐 영국에서 산업혁명으로 꽃을 피운 것처럼 세계축구의 중심지도 바뀐다. 세계가 촘촘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현대에는 기술의 발전과 문명의 이동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한중일 동북아 3국 축구계의 최근 움직임도 이런 거시적 관점으로 보면 더욱 선명하게 앞날을 살필 수 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2013년 일본 방문 중 다시마 고조 당시 일본축구협회 부회장과 만나 환담하고 있다. 다시마 부회장은 지난달 차기 일본축구협회장으로 당선됐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중국은 최근 몇년간, 특히 이번 겨울 동안 파격적인 선수 수집을 통해 이미 국제축구계의 큰 손으로 자리잡았다.
중국은 단순히 유럽 빅리그와 세계축구의 자원배분을 놓고 씨름하는 상인이 아니라, 빅리그를 지렛대로 세계축구계를 흔드는 거인이자 축구자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으로 변하고 있다.
장지룽 AFC 부회장이 오랜 기간 아시아와 국제축구연맹(FIFA)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쌓은 국제 외교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중국의 유일한 유일한 약점은 대표팀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흐름대로라면 그 약점도 머지 않은 장래에 보완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10년 안팎에 세계 축구계에서 중국의 위치가 어떻게 될지 짐작하기 어렵다.

일본의 보폭도 커졌다.
J리그가 질과 양에서 탄탄한 내실을 쌓아가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당선된 다시마 고지 일본축구협회장 내정자는 2019년부터 J리그를 유럽리그 일정에 맞춘 추춘제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각급 대표팀 운영 목표도 성적에 두겠다고 다짐하는 등 큰 변화를 예고했다. 특히 지난해 FIFA 집행위원에 당선된 다시마 내정자는 AFC에 이어 FIFA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외교 역량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요동치는 동북아 축구,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축구는 동북아 축구의 거대한 변화 움직임을 앞에 두고 심각하게 대응책을 모색해야할 상황에 처했다. 크게 보면 한국축구의 고유한 과제를 원칙에 맞게, 그러나 속도감 있게 해결하면서 대외적인 환경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오른쪽),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오른쪽에서 세번째), 신태용 코치(네번째), 황보관 기술교육실장(다섯번째) 등 한국축구 수뇌부가 지난해 4월 2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JS컵 청소년대회 한국-우루과이전을 지켜보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우선 내부 제도정비가 급하다. 일본과 중국에 앞서 출범했지만 아직도 불완전한 프로리그 승강제의 안착과 아마추어를 포괄하는 리그구조 완성은 어떤 난관에도 반드시 이뤄야할 필수과제다. 일본축구협회장 내정자의 공약인 프로리그 추춘제 전환 문제도 국내 도입 여부와 상관없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목전에 닥친 엘리트 축구와 생활 축구의 행정 통합도 잘 마무리하고,그 성과를 더 큰 동력으로 연결해야 한다.

각급 대표팀의 전력을 강화해 한국축구를 아시아의 맹주이자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가야 한다. 강한 대표팀의 뿌리가 되는 유소년 유망주 발굴 및 육성 시스템을 정비하고, 각급 대표팀의 훈련과 경기도 확대하고 심화시켜야 한다.

축구산업 활성화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현실 적응력을 높이려 노력도 필요하다. 기획, 마케팅, 연구 전문 인력을 키우고 이들이 창의적이고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조직문화도 구축해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축구의 위상과 발언권을 높이기 위한 외교력 강화도 절실하다. FIFA, AFC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인력을 더 키우는 한편 일본과 중국을 넘어 세계와 경쟁하고 협력하기 위한 장단기, 상하위 전략도 세워야 한다.

한국축구가 비약적 발전을 이룰 중요한 기회가 될 통일한국시대에도 대비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현재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으로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역사적인 전환점은 도둑처럼 와서 벼락처럼 들이닥친다. 통일과정을 통해 한반도라는 공간과 축구라는 종목의 한계를 넘어 세계 인류와 공유할 보편적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준비도 시작해야 한다.
jkly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