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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 텃밭 일기

새끼 참새의 죽음과 돌나물 꽃이 전한 여름 소식

새끼 참새의 죽음과 돌나물 꽃이 전한 여름 소식

2014년 5월 24일


지난 21일이 소만(小滿)이었습니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생장해 가득찬다는 여름 절기지요. 그래서 그런지 상추를 비롯해 쌈 채소는 모종, 파종 할 것 없이 무성하고요. 고추 토마토 감자 호박 오이 피마자 부추 더덕 취나물도 주말농장 텃밭에 갈 때마다 쥔장을 놀라게 합니다.

입하(立夏)가 어린이날인 5일이었고요. 현충일인 다음달 6일이 망종(芒種)이네요. 망종은 벼,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러기 작물의 씨앗을 뿌리는 때, 즉 보리를 베고 모내기를 할 때입니다. 월드컵 본선이 한창인 6월 21일이 일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고요.

찬바람이 슬슬 불 때까지 밭의 모양은 그야말로 하루가 무섭게 달라집니다. 
올해는 하도 정신 없고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아 봄이 어떻게 왔다가 갔는지도 모르고 지냈는데 문득 눈을 들어 주말농장 텃밭을 둘러 보니 그야말로 여름 천지더군요.



밭둑에 핀 노란 돌나물 꽃이 애처롭고 앙증맞습니다. 밭둑의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봄에 조성한 돌나물 무더기 중 그나마 습기가 좀 있는 아랫쪽의 것들은 아직 잎만 푸릇푸릇한데, 금세 말라버리는 위쪽 바위 옆에 뿌리를 박은 놈들이 꽃을 피웠습니다. 아예 습기가 없는 곳에 있는 놈들은 아직 잎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습니다. 비라도 흠뻑 오면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훌쩍 건너 뛰어 순식간에 꽃을 피우고 서둘러 열매를 맺겠지요.

모종으로 심은 열매류 작물들의 성장세도 눈에 띕니다. 토요일인 24일, 지난 주 함께 뒤섞여 있던 아욱과 열무를 솎아내고 그나마 꼴을 갖춰준 고추와 토마토 밭에 지주를 세웠습니다.


고추를 제법 많이 심었던 지난해까지는 밭 양쪽 끝과 가운데에 지주를 세우고 나머지 모종은 줄을 노끈으로 엮었습니다. 그러나 매년 고춧대를 말려 죽이는 탄저병을 도저히 막을 자신이 없어 올해는 고추 모종 수를 확 줄었습니다. 그냥 장마가 들기 전까지 풋고추나 따먹고 말자는 심산입니다.
자연히 몇년간 써온 지주가 여유가 있습니다. 한 포기당 지주 하나씩 촘촘히 꽂고도 남았습니다.


텃밭에서 배밭으로 이어지는 언덕 바로 아래 심었던 호박과 오이 밭에도 남는 지주를 세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밭을 보니 건물의 철골 구조물처럼 기하학적인 문양을 갖춘 지주를 세웠더군요.
그러나 제 밭은 호박이든 오이든 한 발 길이로만 자라면 곧바로 언덕으로 이어지니 지주에 정성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지주 다섯개를 뚝딱 박고 노끈만 얼기설기 엮었습니다.
오이 순은 위로 자라고 호박 순은 옆으로 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올해는 일단 언덕까지만 넘어가도록 한 뒤 그냥 팽개쳐둬볼 생각입니다. 호박을 옆으로 뻗어나가게 하고 오이는 위로 올라가도록 지주를 세우려고 해도 호박과 오이를 심은 위치가 뒤바뀌어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없습니다. 
오이와 호박 넝쿨이 마구잡이로 얽혀 자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궁금하고, 무성한 잎 속에 숨어서 커가는 호박과 오이를 찾아 따먹는 즐거움도 누려보려고요.

이번 주에도 텃밭에는 어김없이 새 식구가 늘었습니다.


참취입니다. 지난해까지 밭에 심었던 참취를 초봄 집으로 옮겼다가 다시 심었는데요. 이 놈들은 제법 군락을 이뤘습니다. 이 때 지난해 가을 채취한 참취 씨도 함께 뿌렸는데 들깨 싹을 가운데 두고 세 포기가 싹을 틔웠습니다. 뭔가 고개를 내밀기에 긴가민가 했는데 이번 주말 제법 취나물의 모양을 갖춘 녀석들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지난 주 마 싹이 두 개 보였다는 소식을 전했는데요. 일주일 사이에 여섯 포기가 더 나와 도합 여덟 포기가 됐습니다. 마 옆에 보이는 달래는 초봄 밭둑에서 옮겨 심은 것입니다. 뿌리는 제대로 박은 것 같은데 가뭄 탓인지 잎이 쑥쑥 자라지 않고 비실비실합니다.


팍팍 뿌려둔 씨앗에서 무더기로 싹을 틔웠던 더덕은 이제 제법 틀을 갖췄습니다. 뿌리째 심었던 더덕은 힘차게 줄기를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일요일 출근 전 조광래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아들의 결혼식장에 들러야 했기에 오전에 서둘러 밭을 휙 훑어보기만 하고 곧바로 돌아나오는 저를 보고 텃밭 사장님이 한 말씀 하십니다.
"류 사장은 오새는 밭에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은데도 작물은 다 잘 되는 것 같아!"
텃밭에서 저를 부르는 말이 '류 사장'입니다. 제가 밭에 신경을 안 쓴다니요. 자주 못 와 봐서 그렇지 틈이 날 때마다 들여다 보는데 말입니다. ㅎㅎ

<슬프고 아린 소식 하나>
지난 14일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오다 찻길에서 새끼 참새 한 마리를 발견했답니다. 제 딴에는 어미를 잃고 헤매는 놈을 위험한 찻길에 그냥 두기가 걱정스러워 텃밭 옆 풀밭으로 옮긴 뒤 둥지를 만들어 주고 먹이랍시고 뱀딸기까지 따서 곁에 뒀답니다.
금요일인 16일 저와 함께 밭에 가면서 아들에게 사정을 전해 듣고 "새끼가 혼자 울고 있어도 찻길에서 벗어난 곳으로 옮겨 그냥 두는 것이 옳았다. 사람 눈에는 안 보이지만 어미가 숨어서 새끼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네가 가져다 옮기는 바람에 참새 새끼는 보호자를 잃고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고 야단 겸 설명 겸 해서 말해줬습니다.

밭에 가보니 참새는 없고 둥지만 덩그러니 있더군요. 숲속으로 갔거나 천적에게 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고 혼자만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밭둑의 풀을 베어내다가 풀 속에서 죽어 있는 참새를 열흘만에 발견했습니다. 아들 녀석도 그 모양을 보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후회하는 빛이 역력하더군요.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지난 주 했던 이야기를 한번 더 반복하는 것으로 마무리짓고 말았습니다.
아들 녀석이, 아무리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상대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하면 결국 해를 끼치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