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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 텃밭 일기

뽑고 꺾고... 생태계라는 무서운 말!

뽑고 꺾고... 생태계라는 무서운 말!
2014년 6월 2일

지난 2일 이른 아침. 주말농장 텃밭으로 횡하니 갔습니다. 이틀도 안 됐는데 그새 밭은 또 무성해졌더군요. 특히 감자순은 땅을 다 덮었고, 쇠비름도 그새 또 자랐고요. 들깨도 몇 포기는 병이 들었는지 배배 꼬이고 잎도 뽁뽁이 모양이 돼 있었습니다.

이걸 보고 그냥 발길을 돌릴 수가 없더군요.
작업 시작!


먼저 감자순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감자씨를 놓은 뒤 벌써 세번재 순 정리입니다. 예년에는 감자씨를 묻은 뒤 그냥 팽개쳐 뒀는데 올해는 페친 조영학 님의 조언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순을 정리해주면 감자 알이 굵어지고 양도 많아진다고 하더군요.



밭둑의 잡초도 무성하더군요. 역시 그냥 두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큰 화근이 되는 바랭이를 뽑아냈습니다. 앞 글에 썼듯이 쇠비름은 그대로 고이 모셔뒀습니다.



병이 들었거나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비틀어진 들깨도 역시 정리했습니다.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너무 촘촘하게 자라서 좀 듬성듬성하게 자리를 잡아줘야겠다는 생각도 물론 있었지요.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이런 일을 시시콜콜 쓰는 이유가 뭐냐고요? 밭둑에 앉아 곰곰 생각해 보니 지난 5월 26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우리 회사 주최 심포지엄을 한 뒤 강준호 체육교육과 교수가 한 말이 떠오르더군요.

심포지엄 주제가 '2018  평창올림픽 이후 한국체육의 새 패러다임'이었는데요. 발제자와 주제 발표자, 그리고 토론자들이 "한국 체육의 선순환을 위한 생태계 조성"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날 토론의 좌장을 맡았던 강 교수가 뒷풀이에서 한 말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사실 생태계라는 말이 참 무서운 말이에요. 한 국가의 체육이든, 국가 내의 특정 종목이든, 종목 내의 선수들이든 경쟁을 거쳐 이긴 자가 살아남도록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말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치열한 경쟁,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인 가치관이 들어 있는 말이거든요."

이쯤 되면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시겠지요.
위 사진을 보면 제가 한 행위의 동기와 의도, 그리고 곧 닥칠 결과가 드러납니다. 살아남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 말입니다.
감자순에서는 본 줄기는 살아남았고 곁가지가 잘려나갔습니다. 쇠비름과 바랭이에서는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무사했고 득이 안 되는 것은 여지없이 뽑혔습니다. 들깨에서는 크고 미끈한 것은 자리를 지켰지만 병들고 약한 것은 뽑혀서 잘린 뒤 살아남은 것을 살찌우는 거름이 됐습니다.

이거 제가 너무 심각한가요? 여하튼 저는 생태계라는 말이 무섭습니다. 다음에 밭에 들르면 또 이런 짓을 할 제 손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