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와 공생? 파종 일주일만에 싹을 보다>
4월 19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지 사흘째이자 4.19 민주혁명 54주년 19일 토요일. 며칠째 안타깝게 텔레비전을 들여다봤다. 이런 날 텃밭에 가야 하나 혼자 생각하다가 점심을 먹고 결국 막내와 함께 주말농장을 찾았다.
토질이 사질토인데다 봄가뭄이 워낙 심해 지난 주에 뿌려둔 씨앗들이 제대로 싹을 틔웠을까 걱정했는데 열무 아욱 상추는 생각보다 잘 나왔다. 그러나 얼룩이콩을 비롯해 더덕 마 호박 방아는 아직 소식이 없다. 예상했던 대로다.
수수는 씨앗을 뿌리기 전 미리 불렸기 때문인지 곳곳에서 싹을 내밀었다. 잡초인 줄 알고 막 뽑다보니 끝에 수수 씨앗이 달려 있다. 절반 이상을 뽑아냈지만 애초에 씨앗을 많이 뿌린 것이 다행이다. 뽑다 남은 것으로도 넉넉하다. 다 컸을 때 키가 2m를 넘는다. 적당히 자라면 간격을 맞춰 옮겨 심어야 하는데 공간이 날지 걱정이다.
주말농장 사장님이 챙겨 뒀다가 전해둔 더덕 여섯 뿌리와 돼지감자 10여개를 공간이 되는 대로 여기저기 심었다. 다음 주 정도에는 토마토와 오이를, 5월초엔 고추모종도 심어야 하는데. 밭이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넓어졌는데도 심을만한 공간이 없다. 이게 뭔 조화인지 원.
열무는 모종판을 덮어둔 덕인지 비둘기의 공격을 잘 피했다. 너무 촘촘하지 않게, 뿌린 씨앗은 빠짐없이 싹이 텄다. 5월에 뽑아내기 전에 서너번 더 솎아먹을 수 있을 분량이다.
아욱 씨앗도 적당히 잘 발아됐다. 이것 역시 여러차례 솎아먹다가 10여 포기는 크게 키워 넓은 잎을 따면 된다. 한두포기는 꽃을 피워 씨앗을 받을 수도 있다.
상추 싹은 너무 촘촘하게 났다.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기를 기다리다가는 밭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 틈 나는 대로 솎아내고 어느 정도 자라면 간격을 맞춰 옮겨 심어야 한다.
뭘 심었는지 알 수 있게 함께 꽂아둔 씨앗 봉지에서 담배만 보인다. 담배상추다. 다 크면 잎이 담배처럼 넓고 두껍다고 하는데 어떤 모양일지 아직은 상상이 안 된다.
모종으로 심었던 채소는 제대로 뿌리를 내린 듯 본격적으로 성장할 기세다. 모종 사이사이에 뿌려둔 상추 씨도 싹이 텄다. 올해는 아무래도 상추를 주체하기 힘들 것 같다. 부지런히 이웃에게 나눠줘야할 듯.
토종 적축면 상추
붉은 로메인?
붉은 치커리
부추는 아직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 같다. 잎이 부실하다. 아무래도 2주 이상 지나야 수확이 가능할 듯.
부엽토를 파러 가는 길에 산자락에서 달래를 발견했다. 꽃삽으로 흙째로 파와서 흙을 털어낸 뒤 한 포기씩 따로따로 부추 옆에 심었다. 줄기보다 뿌리의 향이 더 강한 달래는 꽃이 부추와 비슷한데 씨앗은 어떻지 모르겠다. 올해는 씨앗만 받아 뿌리고 수확은 내년쯤에나 기대해야겠다.
당귀와 신선초, 곰취와 참취 등 다년생 작물은 얼핏 보기에는 처음 심을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렵다.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더 긴 것 같다. 역시 2주 이상은 지나야 수확할 수 있을 전망.
곰취. 처음 심었을 때와 큰 차이가 없다.
참취도 큰 변화가 없다. 참취는 금방 순이 억세지고 추대가 빠르다. 처음 올라온 잎과 줄기를 잘라왔다. 새로운 줄기가 나오거나 기왕 나온 줄기 중 잎 부분에서 새 가지가 나올 것이다. 비닐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참취는 일년에 몇차례 수확은 한다고 하지만 노지에서 키우는 것은 이렇게라도 해서 수확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당귀는 새로운 잎이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 나오는 새 잎부터 수확해야 할 듯.
신선초는 일주일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맛은 잘 모르겠지만 그다지 효율적인 작물은 아닌 것 같다.
함께 따라간 막내가 달팽이를 찾았다고 야단이다. 더듬이를 건드려 보고 옷에 붙이기도 해 보면서 신기해 한다. 집으로 데려가서 키우겠다는 걸 간신히 뜯어말려 풀숲에 놓아줬다. 달팽이 집에 지붕을 만들어 주겠다며 새 풀을 덮었다.
달팽이는 주말농장이나 텃밭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동물이지만 사실 해충이기도 하다. 상추를 비롯해 작물의 잎사귀를 갉아 먹고 잎 뒷면에 알을 낳아 상품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텃밭에 깃들어 사는 동물들과 함께 나눠먹겠다는 생각으로 농약을 안 치는 도시농부에게는 생생한 잎이나 달팽이가 거쳐간 잎이나 그게 그거지만.
밭의 경사가 심하다 보니 밭 이랑이 무너지고 푹 꺼진 곳이 여러군데다. 어둑해질 때까지 텃밭 아래 길바닥의 흙을 퍼와 밭 이랑을 돋웠다. 산에서 부엽토를 퍼다 모래밭 위에 덮고, 물도 두차례씩 줬다. 귀가해 저녁을 먹고 하루를 정리하는 지금까지 온 몸이 욱신거리고 쑤신다. 다음주부터는 슬슬 물이나 주며 식물들이랑 같이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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