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일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이 장애인 체육의 현실과 올해 벌어지는 소치 동계장애인올림픽과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준비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회장은 “국민의 성원과 후원이 이어지면 장애인 선수들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이상화와 김연아, 이규혁에 버금가는 감동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장애인 체육 수장을 맡게 된 사연이 궁금하다.
공군참모총장 시절인 2006년 ‘장애인 축구선수들이 훈련장이 없어 훈련을 못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우연히 접한 뒤 청주의 공군사관학교 운동장과 숙소를 제공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2007년 4월 제 전역식에 장애인 축구 대표가 참석하는 등 교류가 계속됐다. 2007년 11월 뇌성, 시각, 청각, 지적 장애인 축구협회로 분산돼 있던 협회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초대 대한장애인축구협회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인연이 어어져 2008년에는 베이징 패럴림픽 한국선수단장을, 2012년 10월에는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조직위까지 책임지게 됐다. 지난해에는 대한장애인체육회장에 취임했다.
-소치동계올림픽, 브라질월드컵, 인천아시안게임 등 올해 벌어질 3대 빅 스포츠 이벤트에 소치 동계패럴림픽,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을 더해 5대 이벤트라고 부르자고 평소 주장한다고 들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설명하며 장애인 체육에 대한 관심을 일깨운다. 체육계와 정부 관계자들은 “장애인 대회 2개는 비장애인 대회에 이미 포함돼 있는 게 아니냐”며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피해간다.
소치 동계패럴림픽은 선수들이 4년간 각종 국제대회에서 참가 자격을 얻고 훈련해온 중요한 대회다. 오는 10월 안방에서 열리는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은 장애인 체육 발전에 큰 획을 그을 계기다. 이들 대회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되는 통합사회를 실현하고 보다 많은 장애인들의 삶이 행복해지기를 기대한다.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대해 낯설어 하는 국민이 많은 것 같다.
2005년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돼 장애인 체육 업무가 보건복지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되면서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출범했다. 생활체육, 전문체육, 국제체육 등 장애인 체육 관련 제반 사항을 관장하는 대한장애인체육회는 16개 시도지부와 27개 가맹단체, 4개 장애유형별 체육단체를 산하에 둔 국내 최상급 장애인 체육 공공기관이다.

올해 열리는 두 개의 장애인 대회를 묶어 ‘5대 국제 스포츠 이벤트’라고 불러야 한다는 김성일 회장이 장애인과 장애인 체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장애인 복지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인식이 생각보다 낮은 듯 한데.
한국의 등록 장애인은 300만명 정도다. 세계 인구의 약 10%가 장애인이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은 490만명 정도로 짐작된다. 이 중 등록된 장애인 체육선수는 1만 4600명에 불과하다. 2009년 이천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이 개원됐고, 장애인 체육 실업팀도 39개로 늘어나는 등 장애인 체육 환경은 발전했다. 그러나 영국과 네덜란드 덴마크 등 장애인 체육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선진국 장애인 체육 단체는 모두 왕립이나 국립기관으로, 국가의 완벽한 보호를 받는다.
세계경제 10대 대국이라는 한국의 장애인 관련 예산이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10%는 돼야 하지만 1%도 채 안 된다. 장애인 체육에 대한 정부와 기업, 일반 국민의 인식도 형편없다. 장애인의 복지, 비장애인과 동등한 대우 등을 말하지만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고 제도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월소득 120만원 이하 장애인은 기초수급대상자로 지정돼 정부로부터 의료비와 중·고교생 자녀의 학비를 지원받는다. 그러나 월소득 120만원을 넘으면 혜택이 모두 없어진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월 300만원 이상은 벌어야 하는데 이를 보장할 체육팀이 거의 없다. 이러다 보니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이 도중에 운동을 그만 두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수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이 각각 5억원과 180억원이다. 선수 숫자도 비슷한데 이렇게 큰 차이가 날 까닭이 대체 뭔가? 지난해 정부가 알펜시아에 동계 체육 선수용 숙소 20동을 마련했는데 이게 모두 비장애인용이었다. 그나마 올해 장애인용 숙소 5동을 마련해 준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
대회나 행사가 벌어질 때 여관을 숙소로 쓰는데 장애인을 안 받는 경우가 많다. 찜질방을 찾아가도 마찬가지다. 수 년 전 장애인축구협회 사무실을 구하려고 서울의 한 건물 주인과 전화로 임대차 계약에 합의한 뒤 도장을 찍으러 갔다. 그런데 건물주가 ‘장애인’이라는 말을 듣더니 건물가치가 떨어진다며 계약을 거부했다. 우리 장애인은 몸이 불편하지만 그 사람은 마음에 더 큰 장애가 있었던 것 아닌가.
요즘 자신이 장애인을 차별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특정한 상황에서 이같은 문제가 계속 생기는 것은 결국 장애인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국민의 인식 수준이 아직 낮고 관심이 적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성일 회장은 장애인 체육과 인연을 맺은 뒤 자신의 인생이 더욱 의미 있고 감동적인 것으로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장애인 체육 관련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때는 언제였나.
선수들의 강렬한 도전의식을 접할 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저도 나름대로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장애인 선수들을 보면 나보다 훨씬 강하더라.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다.
선수들의 순수한 동료애도 본받을 점이다. 비장애인은 도움을 줄 때 이해타산을 따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장애인은 상대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걱정한다. 모두 힘들지만 빵 하나라도 나눈다. 어떤 때는 이상할 정도로 도와주는 사람에게 무덤덤한 태도를 보인다. 이유를 물어보니 “상대가 나를 불쌍하다고 여긴다면 당연히 도움을 거절하거나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봐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마음이다”라고 하더라.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2008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신보미가 보치아에서 금메달을 딸 때였다. 보치아 경기를 처음 봤다는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사람이 저렇게 정교한 플레이를 할 수 있나. 우리 국민이 이런 경기를 꼭 봐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신보미는 경기에 앞서 “나이가 들어 복지관에서 나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 방을 못 구했다. 꼭 금메달을 따 연금으로 방의 월세를 마련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경기 후 내 목을 끌어안고 “이제 살 길을 찾았다”며 펑펑 울었다.
우리 국민이 장애인의 이런 기막힌 현실과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 꿈을 이루기 위해 흘리는 땀과 눈물, 그리고 마침내 거둔 값진 열매에 대해 생각하면서 경기를 보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을까. 비장애인이 인생과 이웃에 대해 성찰해볼 일이 장애인의 삶과 장애인 체육에는 무수히 많다. 이런 감동적인 사연을 함께 나누고 싶은 기업이나, 학교, 지방자치단체 등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 강연을 할 생각이다.
-2014 소치 동계패럴림픽에 임하는 목표는.
선수들이 지난 4년간 이번 대회를 위해 땀을 흘렸다.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휠체어컬링에서 동메달,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아이스슬레지하키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 한국은 4년 후 평창에서 대회를 연다. 이번 대회는 성적은 물론이고 평창 대회 준비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최근 한철호 ㈜밀레 대표를 한국선수단 단장으로 위촉했다. 1억 5000만원 상당의 의류 지원을 약속한 한 단장 같은 사람도 있지만 장애인 체육에 대한 우리 기업의 지원은 아직도 인색한 것 같다.
아직 대부분의 기업이 후원에 대해 당장 돌아올 이익 차원에서 검토한다. 장애인 체육 후원이 비장애인 체육만큼 기업 이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 기업이 장애인 체육 후원을 통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한편 수익도 늘리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김성일 회장(왼쪽)이 지난 11일 평창 알펜시아에서 열린 2014 소치 장애인올림픽 결단식에서 한철호 한국선수단장(오른쪽), 소치 대회 한국선수단 기수인 정승환(아이스슬레지하키, 강원도청)과 함께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제공 | 대한장애인체육회
-10월로 예정된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의 목표는.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은 10월 18부터 7일간 아시아 42개국 6000여명의 선수단이 총 23개 종목에서 경쟁을 펼치는 큰 대회다. 한국 선수단은 이번 대회 성과를 바탕으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장애인하계올림픽, 2018 평창 장애인동계올림픽에서 세계 10위권의 장애인 체육 강국으로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이번 대회를 계기로 전문화된 경기운영과 장애인 친화적인 시설 준비, 첨단 대회 정보 체계 구축, 장애인 체육 실업팀 창단, 경기 단체 중심 사업 강화, 선수 복지 향상, 신인 선수 발굴과 세대 교체, 스포츠 의·과학을 적용한 훈련 지원 시스템 마련 등 장애인 체육 강국의 위상을 확보하겠다.
-부족한 정부 예산, 개최도시 인천시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고심 중이라고 들었는데.
당초 요청액보다는 크게 줄었지만 국회가 799억원의 예산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 금액은 예산 총액에 대한 승인일 뿐 국고 지원금 45%을 뺀 55%는 인천시의 지방비와 각종 후원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후원금을 모으기가 쉽지 않아 아직 예산 규모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대회 준비에 물리적, 시간적으로 너무 빠듯하다. 최소 6~7년 전 조직위가 구성돼 차근차근 준비해야 하지만 2년만에 모든 걸 하려니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그러나 예산만 확보되면 다른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할 수 있다. 자신 있다.
2002년 부산에서 열린 아태장애인대회 때는 대통령 주관 회의에서 문제를 해결했다. 정부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해서는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해 현안을 챙기고 있다.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도 그만큼 중요하다.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이 이전 대회와 차별화를 이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하나되는 아시아’라는 비전을 갖고 대회 규모는 물론 감동과 의미에서도 역대 최고 수준이 되도록 하겠다. 40억 아시아인이 함께 할 수 있는 감동적인 문화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박칼린씨를 선임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되는 감동과 화합의 무대를 연출할 것이다.

김성일 회장은 장애인과 장애인 체육에 대한 정부와 기업, 국민의 성원과 후원이 절실하다며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대한항공, 농협에 이어 최근에는 특장차 전문기업인 오텍그룹과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공식 후원사 협약을 맺었다.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가진 다른 기업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장애인 체육과 장애인 인권은 우리 사회의 통합과 복지 증진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사회 공헌, 사회 통합 측면에서 기업의 사회 투자의 새 방향을 보여줄 훌륭한 모델이다.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한다.
-대한장애인체육회장으로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먼저 정부와 기업, 국민이 장애인과 장애인 체육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열심히 뛰어다니겠다. 다음으로, 우리 장애인 선수들도 ‘경기와 훈련을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하겠다. 자부심과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번째는, 한국 장애인 선수들이 은퇴 후 각종 국제경기나 국제기구에서 심판이나 임원, 지도자로 활약할 수 있도록 언어와 전문 소양교육을 강화하겠다. 네번째는, 장애인 선수들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제몫을 다하도록 장애인고용촉진법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필요하다면 새 법안을 발의하는 등 제도 개선에 노력하겠다.
류재규 부국장 jklyu@sportsseoul.com
◇김성일 회장 프로필
학력 : 경북고~공군사관학교(20기)~국방대학원 국제관계 과정~연세대 행정학 석사~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고려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경력 : 합동참모본부 비서실장~공군 11전투비행단장~항공사업단장~합참 인사군수본부장~국방정보본부장 겸 합참정보본부장~공군참모총장(29대)~대한장애인축구협회장~2008년 베이징장애인올림픽선수단장~대한장애인올림픽위원회(KPC) 부위원장~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조직위원장(2012~ )~대한장애인체육회장(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