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의 핫이슈였던 성남일화의 새 둥지 찾기가 지난달 2일 이재명(49) 성남시장의 시민구단화 결단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성남시민구단(가칭 성남FC)의 앞날을 여는 열쇠를 쥔 이 시장을 지난 15일 성남시장실에서 만났다.
축구계의 난제를 풀어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사실 ‘정치인 이재명’에 대해서는 선입견도 있었다.
민주당 소속인 이 시장은 2010년 7월 ‘시의 절박한 재정 위기’를 들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고, 최근에는 통합진보당과 정책연대에 따른 공격에 시달렸다. 올해 7월 취임 3주년을 맞아 “7285억원에 이르던 시의 비공식 부채를 정리해 성남형 IMF인 ‘판교특별회계 지불유예’를 극복하고 균형예산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밝힌 그는 “통합진보당과 정책연대하면 다 종북세력이냐”고 항변했다. 인터뷰 하루 전인 14일에는 지역 내 10년간의 논쟁을 넘어 1931억원을 들여 매년 30억원의 ‘착한 적자’가 예상되는 시립의료원 기공식을 여는 등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홍준표 경남지사와 차별화된 행보를 보였다.
196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 시장은 가정형편 때문에 성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시계공장에서 일을 하다 장애를 입는 시련 속에서도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중·고교를 검정고시로 마쳤고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하던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성남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런 이력 때문에 이 시장이 프로 스포츠에 편견을 갖거나 경직된 사고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축구단을 둘러싼 핵심 쟁점과 현안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시민구단에 대한 철학도 분명했다. 지난달 2일 회견에서도 그는 프로축구단 인수는 모라토리엄을 극복하면 시민의 삶을 풍성하게 가꾸겠다고 했던 공약의 이행 차원임을 강조했다.
인터뷰 중에도 자신의 생각을 열린 태도로 열정적으로 전했다. 덕분에 곁가지를 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재명 시장은 중·고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시장에 당선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화법은 솔직하고 시원시원했다. 성남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일화 축구단의 미래가 시민구단화로 결정됐다. 안산시와 경합도 했는데 성남시의 고민은 무엇이었나?
재정문제였다. 프로축구단 창단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운영에도 매년 수십억이 드는데, 예산을 계속 투자하는 사업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 시민과 협의하고, 의지를 모을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시민이 창단을 지지해 힘을 실어주셨다. 이제 성남시민은 종교와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프로축구단을 갖게 됐다.
-지난달 2일 인수방침을 밝히면서 ‘더 큰 통합, 더 넓은 참여, 더 밝은 희망’이라는 새 구단 운영 원칙을 제시했는데.
우리 성남은 서울의 철거민을 수용하려고 조성된 본시가지와 강남의 주택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분당과 판교 신도시로 나뉘어 있다. 거주환경도 다르고 지역갈등도 상당히 깊다. 성남이라는 한 울타리에 묶여 있지만 깊숙한 곳에서는 이질감을 느끼며 산다. 사회적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가는 길목에서 열정으로 모든 것을 녹여내는 프로축구단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축구단 인수는 성남을 하나로 만드는 ‘더 큰 통합’의 과정이었다.
구단의 재원은 성남시와 후원기업뿐 아니라 시민주 공모 방식으로 마련 중이다. 성남시는 시민의 ‘더 넓은 참여’를 통해 도약할 것이다. 성남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 내세울 대표 홍보 브랜드를 갖게 됐다. 프로 스포츠 산업의 시너지 효과는 지역경제와 생활체육에 새 기운을 불어넣을 것이다. 유·청소년 선수들은 축구단을 보며 꿈과 희망을 키울 것이다.
-일화축구단을 두고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인들과 갈등도 심했는데.
구단 인수를 발표한 날 목사님들과 오찬을 했다. “시민의 축구 열정이 억눌려 있었다. 시민구단이 잘 되도록 나서달라”고 부탁했다. 목사님들이 흔쾌히 동의했다. 한 장로님이 “목사님, 이제 축구장에 가도 되겠지요”라고 물었는데 목사님이 “그럼요. 같이 손 잡고 갑시다”하고 화답하더라. ‘일화’라는 이름을 빼고 통일교와 단절하면 종교문제는 사라진다, 이것이 지역정서의 대세다. 갈등이 통합의 동력으로 변했다. 축구단은 열정적으로 시민 속으로 뛰어들 일만 남았다.
인수 발표 전 경기장을 찾았을 때 관중이 800명 정도였다. 인수 결정 후 첫 경기에는 6690명, 그 다음 경기에는 4800명으로 늘었다. 막혀있던 시민의 축구 열정이 폭발했다. 관중이 많으니 선수들의 눈빛도 달라지더라. 경기 시작 1분 안에 골을 넣고, 동점골을 내준 뒤 5분도 안돼 또 득점해 2-1로 이겼다.
이재명 시장은 성남시도 종교와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프로축구단을 갖게 됐다며 기뻐했다. 인수 발표 전후 직접 경기장을 찾았을 때 관중과 선수들의 분위기, 지역 내 종교인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전했다. 성남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명문구단의 조건으로 안정적인 재정, 슈퍼스타의 존재, 폭 넓고 충성도 높은 팬, 구단 역사 속에서 형성된 스토리를 꼽는다. 시·도민구단의 경우 특히 핵심적인 과제가 재정과 팬 확보인데.
성남일화는 K리그 역사를 눈부시게 장식하며 승승장구해온 팀이다. 100만 성남시민의 응원을 등에 업고 K리그 클래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 시에는 많은 기업이 있다. 성남시민구단과 함께 발전해나갈 꿈을 가진 기업을 찾고 있다.
시가 당장 슈퍼스타를 영입할 여력은 없다. 충성도 높은 팬을 모으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성남시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시민들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마침내 승리하고야 마는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다. 시민구단이 시민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 바로 그 때가 승리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유·청소년 클럽의 활성화도 중요하다. 지역 내 4개 초등학교팀과 풍생중·고교의 엘리트팀을 포함해 생활체육을 통해 공을 차는 재능있는 선수를 발굴하고, 이들이 시민구단에서 활약한 뒤 더 넓은 세계로 나가면 우수한 선수가 순환되는 시스템이 정착된다. 가족을, 친구와 이웃을 응원하려고 시민들이 축구장을 찾다 보면 모든 시민이 서포터가 될 것이다.
-성남에는 NHN, NC소프트, 카카오톡, KT 본사 등 우량 IT기업들이 많다. 기업 입장에서도 축구단 후원 또는 지원이 사회공헌활동의 좋은 통로가 될 수 있다. 기업 후원 유치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인수작업이 안 끝나 기업들과 공식 접촉은 시작하지 않았다. 이윤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과 함께 새 가치를 창출하려면 서두르는 것보다, 얼마나 잘 준비해 효율적으로 설득하느냐가 중요하다. 기업이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팀 이미지를 개선하고 충성도 높은 시민주주와 팬을 확충해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
K리그 초창기엔 기업이 구단을 창단했다. 수익 일부를 환원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 시민구단은 기업과 시민, 자치단체가 윈-윈할 틀을 찾고 있다. 성남시민구단도 시민과 기업이 지역정서를 바탕으로 새 스포츠 문화를 만들고 싶다.
-성남시는 재정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하는 것을 비롯해 1440명에 이르는 시민구단추진위원을 위촉했고, 시민주 공모도 받고 있다. 현재 진행 상황은?
예비주주 공모를 시작한 지 2주만에 2200여명이 1억 2000만원을 신청했다. 본격 공모가 시작되면 더 많은 분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할 수 있다’는 긍정 마인드로 일화 구단과 협상이 마무리되는 12월말까지 더 많은 시민과 기업이 참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재명 시장은 성남일화의 24년 기록의 승계에 이견이 없다고 밝혔다. 구단을 더 발전시켜 전보다 더 나은 미래를 열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성남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성남에서의 14년을 포함해 일화 구단의 24년 역사와 전통, 기록, 팀의 레전드를 비롯한 인적 유산 중 어떤 부분을 이어받고 버릴지에 대한 고민이 깊을 것 같다.
성남일화가 지난 14년 동안 성남의 이름으로 뛰었고, 성남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 역사를 지우지 않고 이어가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리그 최다인 7회 우승, 아시아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이라는 놀라운 성적도 이어받겠다. 나아가 그 기록을 뛰어넘는 팀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탄천종합운동장과 성남종합운동장 중 어디를 주경기장으로 할 것인가? 프리미엄 고객을 위한 수준높은 마케팅을 하거나 관중이 몰리는 빅게임에 대비해 경기장을 리모델링할 계획은 없나? 축구장을 중심으로 캠핑 등 레저와 문화를 복합하는 공간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클럽하우스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시민구단 지원조례에 탄천종합운동장과 성남종합운동장을 다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수용규모가 더 큰 성남종합운동장으로 주경기장을 옮기려면 추가비용이 2억원 가량 든다. 탄천종합운동장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지만, 앞으로 주차여건과 시민의견을 수렴하겠다. 경기장 리모델링을 통한 매장 확보, 광고탑 설치 방안도 마련하겠다. 다양한 문화행사나 즐길 거리를 만들어 시민이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입장료 인하도 검토하겠다.
축구장 인근에 대규모 부대시설을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가용토지가 없어 현재 부지를 재활용해야 한다. 관중석과 경기장 사이에 있는 트랙을 잘 활용해 전용구장에 가깝게 리모델링하는 것은 검토하겠다.
클럽하우스 문제도 고민하고 있다. 구단 인수 후 장기 발전 전략을 종합적으로 짜 보겠다.
이재명 시장은 축구팬의 관심이 가장 큰 코칭스태프와 프런트 구성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에 대해서는 이들에게 무슨 종교색이 있겠느냐고 반문했지만, 프런트에 대해서는 시민구단의 가치 공유와 능력을 기준으로 들었다. 성남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축구 팬 입장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점은 코칭스태프 및 선수단 구성이다.
선수단은 특정 인맥에 좌우되지 않는 영역이라고 본다. 구단의 뿌리인 시민이 동의하는 사람이면 문제가 없지 않겠나. (기자에게 안익수 감독 등 코칭스태프에 대한 축구계의 평판을 물어본 뒤)현재 감독이나 선수에게는 종교 등 무슨 문제가 있겠나. 가능한 이른 시기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들어 코칭스태프의 안정을 꾀하겠다.
-현재 프런트에 대해 일괄사표를 받은 뒤 거취를 결정한다고 들었다. 원칙과 기준은 무엇인가?
고용은 법적인 테두리에서 안정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프런트 혁신을 요구한다. 모든 분에게 기회는 주겠지만 역량이 부족하거나 새 구단의 가치에 안 맞는 분은 곤란하다. 기업구단은 주어진 돈을 잘 쓰기만 하면 되지만 시민구단은 다르다. 비유하자면 프런트는 모기업이라는 하늘만 쳐다보던 상황에서 이제 땅 속으로 내려가야 한다. 시민 속에서 축구단의 가치를 전파하고 돈을 모으고 팬을 조직하는 등 전혀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성남이 참고할 모델로 일본 J리그의 우라와 레즈, 독일 분데스리가의 마인츠05, 국내 프로야구의 넥센 히어로즈 등의 사례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성남이 꿈꾸는 프로축구단의 미래는?
시민에게 축구가 지닌 건강한 가치와 새 리더십을 제시하고, 감동을 줘 행복한 삶의 에너지를 공급하려고 한다. 시민주주의 형태로 출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스페인의 명문팀 FC바르셀로나처럼 협동조합화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인구가 얼마 되지 않지만 축구로 먹고 산다고 할 정도로 축구단이 시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조합원에게 내준 관중석의 경매가격이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재명 시장이 시민구단에 대한 정치적인 입김을 차단하고 독립경영을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시장은 제도적인 틀을 꼭 만들겠지만 중요한 것은 자치단체장의 의지와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성남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시·도민 구단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겉으로는 재정문제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영을 가로막는 자치단체장의 간섭과 정치적인 입김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때 ‘축구특별시’로 불렸던 대전, 코스닥 상장을 준비했던 인천도 외풍 때문에 부침을 겪었다. 축구단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되 독립적인 경영을 보장할 방안을 갖고 있나?
독립적인 위원회를 만드는 등 시스템을 갖추겠다. 열정적인 축구 전문가를 구단 운영 책임자로 공모할 생각이다. 시민구단에 맞는 가치와 사고를 바탕으로 시민과 팬을 조직할 수 있는 조직 전문가, 흥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벤트 전문가, 경기력과 축구단 조직 자체의 안정을 꾀할 수 있는 경영 전문가를 찾겠다.
그러나 시스템만 갖춘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의 의지와 철학이 문제다. 지원 조례에 공무원 파견, 겸임 조항 등 기본 틀은 있지만 전문 경영자가 독립적인 인사권과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시는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겠다. 전문가에게 맡겨야 경쟁력이 생기고 구단에 활력이 넘친다.
이렇게 해서 성남 공직사회도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시 산하기관인 산업진흥재단이 독립 경영의 모범사례다. 훌륭한 책임자를 뽑아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주고 믿고 지원해 큰 성과를 냈다.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하겠다는 열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축구와 관련된 인연을 듣고 싶다. 좋아하는 선수가 있다면?
어린 시절 새끼줄로 만든 공을 차고 놀았다. 행정가는 시간이 없어 직접 축구경기를 하기는 참 어렵다. 걸어서 출근하는 것이 유일한 운동이다. 통산 100경기에 출전한 성남일화의 박진포 선수가 인상적이었다. 한 구단에서 꾸준히 뛴 선수가 팬의 사랑을 받고, 땀 흘린 만큼 성적을 거두고, 레전드로 성장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
류재규 부국장 jklyu@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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