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17 청소년대회 참패로 본 한국축구 현주소
2007년 8월 28일
성인대표팀의 아시안컵 졸전,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의 세계대회 조별리그 탈락에 이어 17세 대표팀마저도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16강에 못 들면서 대체 무엇이 잘못돼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지도자의 잘못, 준비과정이나 경기 당일 전술상의 문제, 선수들의 정신자세 등에 대한 지적도 있지만 보다 넓고 깊은 안목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부 프로팀이 유망주를 조기 발굴해 집중육성한 결과 등장한 20세 이하 ‘황금세대’를 끝으로 한국축구가 퇴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진단도 있고, 17세 대표팀의 기량 저하는 일시적인 시행착오일 뿐 발전을 위한 토대를 착실히 다져가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27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장문의 보도자료를 통해 ‘17세 대표팀의 문제는 신인선수 드래프트제도 때문이 아니라 학원축구를 비롯한 한국축구계 전반에서 비롯된 것이며 프로축구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축구의 기둥이 될 선수들을 키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프로연맹. “기형적인 선수 육성제도와 대회방식이 청소년대표팀 부진의 원인이다”
프로연맹의 주장은 이렇다. 17세 이하 대회에 출전한 선수 21명 중 11명이 프로팀이 운영하는 유소년클럽(U-18) 소속이다. 13개 프로팀 중 6개팀이 이미 유소년클럽(U-18)을 운영 중이고 3개팀은 내년초 팀을 만들 계획이다. 이 중 5개팀은 U-18팀 뿐만 아니라 U-15(중학교), U-12팀(초등학교)까지 완비했다.
프로구단이 자체 유소년클럽이 아닌, 학교 이름을 건 축구부를 운영하는 것은 선수들에게 최소한의 학원 교육을 제공하고 학원대회 참가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예전처럼 중학 중퇴 또는 중졸 선수들을 뽑아 놓고 정규교육을 전폐한 채 축구만 시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 유소년클럽을 통해 키운 19세 미만 선수들 중 매년 4명까지 구단이 지명할 수 있고 19세 이상 선수들은 드래프트를 통해 선발한다.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입문한 선수들도 3년 후면 자유계약선수로 풀어 원하는 팀을 선택할 수 있다.
17세 대표팀의 기량이 떨어진 것은 이 연령대의 우수자원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기본기 부족도 성적지상주의를 유도하는 특기자 제도, 기형적인 선수육성 및 대회 방식 탓이다. 특히 유소년클럽의 대회 참가는 물론 클럽팀 창단 자체를 막는 대한축구협회 산하 학원연맹과 일선학교, 교육 당국, 지도자 등의 반발과 저항은 클럽시스템 정착의 큰 장애요소다. 프로축구팀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각종 제도나 학원축구팀의 비협조로 ‘기본기 없는 선수들’이 탄생했다.
◇프로연맹 행정과 클럽시스템 자체의 문제도 있다
프로연맹의 이같은 주장에 대한 반론은 프로축구 내부에서도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축구계 자체가 클럽시스템을 포함한 바른 제도와 규정을 실행할 의지가 있느냐이다. 외부의 상황을 탓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클럽시스템도 근본 취지는 옳지만 프로연맹이 구단간 이해관계의 절충에만 급급해 도리어 유소년클럽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일이 잦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먼저 유소년클럽을 통해 지명한 선수의 계약기간(현행 3년)이 너무 짧다. 지명선수를 쓸만한 상황이 되면 계약기간이 끝나 이적료 없이 다른 팀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프로구단들이 선수를 키울 의욕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구단들은 적어도 5년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명선수를 4명으로 제한한 것도 문제다. U-18 클럽만 마친 선수는 4명으로 하되 12세와 15세를 모두 거친 선수에 대해서는 예외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프로연맹은 유소년클럽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올해부터 토토지원금을 구단에 배분했다. 올해는 구단별로 3억원을 배분했고 토토 수익금의 확대에 따라 지원금은 해마다 늘어난다. 그런데 배분 방식에 문제가 있다. 연령별 유소년클럽을 완비한 팀과 클럽을 만들지도 않은 팀에 똑같은 금액을 지급했다. 일부 구단은 토토 지원금을 다른 항목의 운영자금으로 전용하는 일도 있다. 인센티브 효과가 퇴색했다. 성과에 따른 차등지급이 정답이다.
프로선수 등록 연령을 19세 이상으로 제한한 것도 문제다. 프로팀이 유소년클럽을 운영하는 목적은 유망주를 조기에 발굴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프로축구 시스템을 통해 기량을 만개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18세 이하 선수들은 프로 1군무대에서 뛸 수 없고 2군경기나 같은 연령별 대회에만 나설 수 있다. 프로연맹은 내년부터 클럽팀간 대회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고교팀간 대회를 통해서는 고교 수준의 선수를 키울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는 뭐라고 대답할까.
클럽 출신 선수들의 장래에 대한 고민도 여전하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 프로팀과 갈등을 빚은 대학팀들은 클럽 선수들은 뽑지 않겠다고 내부합의해 대학진학을 사실상 봉쇄했다. 프로팀에 못 갔거나 다른 선택을 한 선수들이 의지나 능력에 따라 공부를 더 하거나 축구와 관련한 각종 파생 및 응용 산업에 종사할 길을 터줘야 한다.
◇총체적인 한국축구 시스템과 의식을 바꿔야 한다
수원 감독 시절 ‘김호의 아이들’로 불리는 스타들을 배출한 선수육성 전문가인 김호 감독은 새로 지휘봉을 쥔 대전에서 꿈나무 육성을 통한 구단 발전방향을 모색했다. 그러나 최근 “불합리한 제도 아래서 대전이 생존할 길은 6강 플레이오프행, 즉 성적을 내는 것 뿐”이라고 탄식하며 방향을 전환했다. 조광래 전 서울 감독은 “중학 중퇴 및 중졸 선수들의 부작용 때문에 클럽시스템을 도입하려고 뛰어다녔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구단의 주장에 끝내 뜻을 접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생각이 바른 길이었다”고 말했다. 프로축구계 내부의 문제도 많다는 지적이다.
학원축구가 아마추어리즘으로 돌아가고 엘리트 선수 육성 및 저변 확대를 위한 프로축구의 영역을 인정해야, 그리고 무엇보다 수요자인 팬이 즐거워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바른 방향을 설정했으면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상대의 아픔이 무엇인지, 협력을 통해 공동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축구협회나 학원축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프로연맹의 27일 발표는 그래서 아쉽다. 축구협회 역시 단순 이해 조정에 머물지 말고 한국축구 전체를 책임지는 분명한 철학과 원칙을 제시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마구잡이식 대표팀 운영으로 산하 연맹과 팀, 선수들의 자립을 막는 중앙집권적 사고는 당장 버려야 한다.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돼 공멸을 부르는 무한경쟁을 벌이거나 투자 대신 남이 키운 열매를 따먹기에만 급급했던 것은 프로축구의 빅클럽들도 마찬가지였다. 차분하게 뜻과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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