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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67)최윤겸 사태, 어떻게 봐야 하나

최윤겸 사태, 어떻게 봐야 하나

2007년 6월 26일



감독과 코치, 사장과 사무국장이 줄줄이 옷을 벗는 프로축구 초유의 일이 수년 전 ‘축구특별시’로 불리던 대전에서 일어났다. 지난 4월 폭력 사실이 외부로 알려진 뒤부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이렇게 결말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으나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허탈할 뿐이다.


각자의 선 자리에 따라 이번 사태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폭력에만 초점을 맞춰 한 쪽을 비난할 수도 있고, 폭력의 원인에 무게를 둘 수도 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며 진정한 사과를 하지 못한 당사자들의 미숙을 탓할 수도 있고, 이해 관계 때문에 일을 더욱 키운 주변 사람들의 무책임을 거론할 수도 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구단 행정의 난맥상과 무기력을 짚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최윤겸 감독이 합리적 분업을 통해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결집하는 새로운 프로축구 리더십의 상징이었다는 점, 그리고 최 감독의 불명예 퇴진이 싹을 틔우려던 새 지도 스타일의 좌절이자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초심을 잃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최 감독이 합리적인 역할분담과 협력으로 시민구단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한, 성공한 지도자였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한국축구사에는 영광의 순간도 많았지만 카리스마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뒤틀린 권위주의, 선수는 물론 동료 스태프까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생각하는 비인간화의 늪에 빠진 시기도 있었다. 더 강한 상대를 이기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2002년 히딩크 감독의 월드컵 4강 진출이나 1983년 박종환 감독의 청소년 4강 신화에서도 위험한 독선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엿볼 수 있다.


아집 때문에 실패한 사람들도 있다. 대표팀만 봐도 2004년의 존 본프레레, 2003년의 움베르투 쿠엘류, 1994년의 비쇼베츠 감독이 그랬다.


쓴맛을 본 합리적 리더십의 사례도 있다. 선·후배간 위계질서를 넘어 진실하게 협력했던 2003년 포항의 최순호 감독-박항서 코치, 합리적 분업과 상호 존중으로 결합했던 2002년 아시안게임대표팀의 박항서 감독-최강희 코치, 끝내 리그 우승컵을 안지 못한 채 유공을 떠난 ‘러시아 신사’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 최근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서울의 세뇰 귀네슈 감독의 경우가 그것이다.


실체적인 진실은 모두 밝혀지지 않았고 당사자들의 아픈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당장 이번 일의 성격을 재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책임은 마땅히 물어야 한다. 그러나 한바탕 소동으로 최 감독의 의미있는 지난 날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 역시 어리석다. 실의에 빠진 유능한 젊은 지도자의 등짝을 매정하게 또 후려칠 것이냐, 갈 길이 더 먼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등을 두드려 줄 것인가. 지금 축구계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