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히는 프로축구단의 인사 바람
2006년 9월 13일
지난 5일 한 야당 의원이 “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비서실 국장급 인사 10명 중 3.9명이 6개월 안에 교체됐고, 평균 재임기간은 10.3개월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제시한 뒤 청와대가 “비서실 안에서의 전보는 직위 변동으로 볼 수 없다. 실제 평균 재직기간은 1년 4개월”이라고 반박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갑자기 왠 청와대요. 인사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같은 공식을 군 팀인 광주상무를 제외한 프로축구 13개 구단에 대입해 보면 자못 심각한 통계가 나온다. 지난 2003년말 각 구단의 구단주부터 사무국장까지 핵심 직책 담당자 중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의 비율(지난해말 창단된 경남FC도 포함)은 팬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2년 10개월 남짓한 사이에 전체 50명 중 절반이 넘는 26명(52%)이 교체됐다. 이 수치도 내부승진이나 보직변경은 제외한 것이다. 일부 구단은 두번 이상 주요 직책 담당자가 바뀌었지만 이 역시 통계에서 뺐다.
정치행위의 연장이기도 한 청와대 행정이야 일정 부문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찾고, 당선에 기여한 인재 풀을 돌려야 하는 엽관제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고 하자. 그럼 대체 그동안 프로축구단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프로축구단에 인사 회오리를 몰고 온 가장 큰 사건은 2004년 터진 에이전트 관련 비리였다. 두번째는 지방선거 바람 속에서 시민구단 직원들이 인사 폭풍의 직격탄을 맞고 옷을 벗은 일이었다.
프로축구단 핵심인력의 변화는 단순히 직업의 안정성을 해치는 차원을 넘어 행정의 연속성을 저해해 전문성을 키울 기회 자체를 앗아간다. 장기 발전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프로축구단 운영에 무슨 전문성이 필요하냐고 웃어넘길지 모르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사태가 녹록치 않다. 알다시피 국내 프로축구단 대부분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모기업의 지원을 받거나 일부 구단이 일시적으로 장부상 손익을 맞추기도 하지만 자급적인 재정구조와 거리가 먼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프로구단 고위직원들이 그대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이사회나 실무위원회에 들어가 프로축구 전체의 운영방식을 결정하고 살림살이의 규모와 틀을 좌우한다는 점이다. 프로축구가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중흥의 호기를 날려 버렸다가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제야 새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널뛰기 인사관행과 맞물려 있지는 않을까 돌아볼 일이다.
조직을 좀 먹는 비리의 싹은 도려내야 하고, 새 활력을 모색하기 위한 신진대사는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프로축구단의 인사관행은 건전한 상식을 비웃는다. 이미 끝난 인사는 되돌릴 수 없다. 지난 34개월간의 인사 형태를 돌아 보는 것은 이제부터라도 잘 해보자는 뜻에서다. 아무리 모기업의 돈이라도 땅을 파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돈을 제대로, 정확하게 쓰고 조직의 목적에 맞는 활동을 하도록 사람을 써야 한다. 자신이 몸담은 직장에 대해 안정감과 신뢰를 가질 때 장기 비전이나 의욕도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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