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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125)안정환 고종수 이동국의 그후 10년

안정환 고종수 이동국의 그후 10년

2008년 7월 29일



안정환(32) 고종수(30) 이동국(29). 숱한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며 인기를 마음껏 누린 이들 ‘트로이카’가 펄펄 날던 1998년 한국 프로축구는 찬란하고 풍성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참패한 국가대표팀의 그늘마저 이들이 내뿜는 영광의 빛을 더욱 밝히기 위한 배경인 된 듯했다.


세 명의 이름이 세트로 오르내리다 보니 입단 동기인 것으로 생각하는 팬도 있지만 프로경력으로 따지면 고종수가 2년 선배다. 고종수의 실제 나이는 안정환과 동갑이고, 이동국은 세살 아래다. 안정환과 이동국에 2년 앞선 1996년 광주 금호고를 졸업하고 수원 삼성의 창단 멤버로 참여한 고종수는 1998년에는 이미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당시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던 차범근 감독의 표현처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플레이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라운드 안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쳤지만 밖에서는 의기투합한 동지이자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한 친구였다. 그러나 컬러는 조금씩 달랐다. “술자리에서도 안정환이 요령껏 마시는 반면 가장 어린 이동국은 절제를 못해 다음날 음주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곤 했다. 재기발랄한 고종수는 술자리 자체를 즐겼지만 가끔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사람들의 눈에 띄곤 했다”는 그럴 듯한 얘기가 나돈 것도 이들의 각기 다른 개성과 관련이 있다.


월드컵과 해외무대도 경험했다. 고종수와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의 참담한 결과에 절망한 팬에게 희망의 불씨를 남겼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절정기를 맞은 안정환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도 나섰다. 안정환은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독일무대를 거쳤고. 이동국은 독일과 잉글랜드를 다녀왔다. 고종수는 일본에서 활동했다.


10년이 지난 2008년 세 사람의 상황은 제각각이다. 안정환은 지난 6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에 대비한 국가대표팀에 뽑혔으나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고, 부상 등 극심한 시련을 겪은 고종수는 한때 은퇴 위기까지 갔다가 대전에서 옛 은사 김호 감독을 만나 재기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큰 부상에 울었던 이동국은 지난 5월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와 계약이 종료된 뒤 국내 복귀를 모색하고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은 ‘1998년 트리오’에게 달라진 임무를 요구하고 있다. 안정환은 소속팀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팀내 분위기를 다잡는 리더’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고, 고종수는 시민구단 대전의 키맨으로 활동하고 있다. 친정 포항과 성남 입단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진 이동국은 새 둥지를 찾으면 즉시 전력감보다는 상대에 위협을 주고 팬의 주목을 받는 상징적인 존재의 임무를 수행해야할 처지다. 자신들에 앞서 은퇴한 김주성 고정운 황선홍 신태용 최용수 유상철 윤정환 등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10년 전 그들의 몫은 이제 박주영 이청용 정성룡 이근호 신영록의 것이 됐다.


‘현역 생활’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등산보다 더 어렵다는 하산’을 앞둔 것도 사실이다. 선배 황선홍(부산 감독)의 말처럼 그라운드는 ‘10년 전 트리오’에게 “몸이 안 따라주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해 팀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프로 생활’이라는 가파른 산을 어떻게 슬기롭게 내려와 다음 목적지로 나아갈지에 대한 모범을 보여주기를 팬은 기대 속에 지켜보고 있다. ‘축구 선수 인생의 황혼기’에 이들 트리오가 이전 어떤 때보다 아름다운 불꽃을 태우기를 바란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