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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124)황선홍, 승리에 배고픈 승부사가 돼라

황선홍, 승리에 배고픈 승부사가 돼라

2008년 7월 22일



‘초보 사령탑’ 황선홍(40)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부산의 정규리그 성적은 1승4무10패로 최하위. 지난 3월 9일 전북과 리그 홈 개막전에서 2-1로 이긴 이후 4개월이 넘도록 정규리그에서 승리와 인연이 없다. 특히 올림픽 방학 전 마지막 경기인 지난 19일 대구와 홈경기에서는 4골을 얻어맞고 0-4로 참패했다.


축구계의 대표적인 386세대인 황 감독이 시즌 초 부산이라는 척박한 토양에서 지휘봉을 잡고, 안정환이 합류할 때만 해도 환호하던 축구팬은 최근 들어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잇따른 패배는 황 감독에게 무제한적인 애정을 보내던 사람들을, ‘검증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는 ‘비판적 지지자’로 바꾸고 있다.


황 감독의 부산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차적으로는 기량이 처지는 선수자원의 문제를 든다. 감독은 경기를 잘 풀어가지만 마무리가 안 되고 수비진에 허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구단 내부를 좀 깊이 들여다 보는 사람들은 황 감독의 취임 이전부터 팀에 있던 코칭스태프와 갈등 가능성에 시선을 두거나, 선수 수급 등 전력강화를 위한 핵심 업무에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구단 프런트에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황 감독은 취임과 함께 선수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합리적인 리더십, 꼭 거쳐야할 과정을 빼먹거나 건너 뛰지 않는 정직하고 정상적인 축구, 완급을 조절하면서 정확하고 세밀하게 만들어가는 축구를 하겠다고 다짐했고,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도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초반엔 미덥고 신선하게 보이던 그의 원칙이 최근 들어서는 위기 대처 능력이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답답함으로 바뀌고 있다.


성적에 관한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 유능한 감독은 그라운드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장악하고, 이를 승리라는 최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배치한다. 아무리 옳은 얘기라도 현실을 변화시키거나 소망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면 공허한 자기만족에 그치거나, 정신적인 나태함으로까지 비칠 수 있다. 무엇보다 습관이 된 무승은 경기장을 찾는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황 감독의 경우 아무리 성적이 나빠도 계약기간까지는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믿음이 이런 의구심에 폭발성을 더한다.


부산처럼 재정이 넉넉하지 않고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팀의 베테랑 감독들이 승리와 재미를 함께 얻는 것을 보면 부산 팬들의 걱정은 깊어진다. 단단한 수비와 측면 전개를 통한 역습이 특기인 경남 조광래 감독, 노련하고 투지 넘치는 경기운영으로 거함 수원을 침몰시킨 대전 김호 감독, 아기자기한 패스워크를 중심으로 하는 브라질식 축구로 승수를 더해가는 제주 알툴 감독, 극단적인 공격축구로 19일 황 감독에게 대패를 안긴 대구 변병주 감독이 ‘좋은 축구’라는 원칙과 ‘승리’라는 결과를 동시에 낚았다.

 

단기적인 효과를 위해 장기합숙을 하거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각성시키거나, 한 골을 넣으면 10명의 필드플레이어를 모두 페널티지역 안으로 몰아넣는 낡은 축구로 돌아가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감독 자신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성, 이기는 축구에 대한 지향점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 황 감독은 자신의 축구철학이 승리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가치관을 설파하며 실험정신에 가득 찬 신세대 감독도 좋지만 승리에 배고파 하는 승부사. 그것이 지금 부산 팬이 황 감독에게 절실하게 요구하는 지도자상인지도 모른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