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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123)히딩크 방한과 '독이 든 성배'

히딩크 방한과 '독이 든 성배'

2008년 7월 15일



거스 히딩크 러시아대표팀 감독이 7박8일간 방한 일정을 마치고 지난 14일 출국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뒤 아홉 번째인 그의 방한 타이밍은 절묘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과 베이징올림픽 본선을 각각 앞둔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축구팬은, 러시아의 유로2008 4강을 이끈 그의 메시지에 주목했다.


이딩크가 한국에 월드컵 4강신화를 선사하고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 감독으로 돌아간 직후인 2002년 9월 9일 파주NFC에서 벌어진 박항서 전남 감독의 ‘성명서 낭독사건’을 되돌아 보자. 월드컵 뒤 첫 국제축구대회인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이날 A4용지에 적어온 성명서를 읽었다.


6년 전 일을 돌아보는 것은 한국축구와 히딩크 사이에 이어진 ‘기묘하고 질긴 인연’의 단초가 대표팀 감독의 성명서 낭독이라는 초유의 해프닝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 이후 한국대표팀 감독의 수난사가 이듬해 2월 부임한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박 감독이 원조였다.


대한축구협회가 2002년 9월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북한 아시안게임대표팀과 친선경기에, 광고계약을 위해 방한한 히딩크를 벤치에 앉히려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히딩크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벤치를 지킨 뒤 협회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갈 것이라던 박 감독의 경질설을 공공연하게 흘렸다. 2002년 월드컵 때 코치로 히딩크를 ‘모신’ 박 감독은 “히딩크 감독을 존경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히딩크의 벤치 착석에 대한)사전통보나 협의 등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협회가 오히려 나를 편협하고 옹졸한 인간으로 치부하는 것은 참기 힘들다”며 반발했다. 연봉에 대한 이견 때문에 아시안게임 때까지 ‘봉사’하고 계약문제를 재논의하기로 한 마당에 ‘경질’이라는 협회의 말은 어불성설이라는 반박도 있었다. 박 감독의 행위를 ‘항명’으로 규정한 협회는 선임 73일만인 10월 18일 아시안게임에서 3위에 오른 박 감독의 목을 날렸다.


협회가 이에 앞선 2002년 9월 6일 히딩크와 연봉 10만 달러(추정)에 기술고문 계약을 했고, 에인트호번과 계약이 끝난 후 한국대표팀 감독직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협회는 2003년 2월 코엘류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넘기면서 히딩크와 우선 협상권을 포기했다. 2005년 7월에는 히딩크가 호주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한국대표팀 기술고문 계약도 사문화됐다. 이후 전개된 한국대표팀 감독의 슬픈 역사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한국대표팀 감독의 수난은 눈 앞의 성과에 목을 맨 협회의 비전 부재가 부른 재앙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히딩크가 떠난 뒤 협회는 즉시 히딩크가 어떻게 기적을 이룰 수 있었는지를 분석해 또 그런 기적이 가능한지, 히딩크가 남긴 유산은 무엇인지, 그것이 달라진 한국축구의 환경에서도 의미가 있는지, 만약 당분간은 그런 성과를 내기가 불가능하다면 장기적인 한국축구의 로드맵을 어떻게 그릴지를 결정했어야 했다. 이를 통해 후임 대표팀 감독들에게 실현 가능한 과제를 주고, 이에 따라 공정한 평가를 하는 시스템을 확립했어야 했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2002년 월드컵에 대한 사후 평가와 새로운 비전 확립이 절실하다. 억울한 희생자를 양산하는 어리석은 시행착오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이번 방한에서 정몽준 회장,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코칭스태프, 안정환 등 한국축구의 파워 엘리트들을 만나 경청할 만한 어록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가 떠난 빈 자리에는 히딩크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숙제가 남겨졌다.

 

히딩크를 여전히 ‘사부’로 생각하는 박항서 감독이 최근 전해준 말에는 협회의 정책 부재 속에 개인 차원에서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국축구 지도자들의 처절한 심경이 녹아 있다.


“2002년의 감동을 경험한 축구팬은 죽을 때까지 대표팀에 그 만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축구 시스템은 유럽에 못 미치고, 월드컵 때마다 프로축구를 중단할 수도 없다. 선수들의 생각도 달라졌다. 2002년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 주지 않으면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안 하면 되는 것이고, 그럼에도 받아들였으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독이 든 성배’를 들어야 하는 한국대표팀 감독의 슬픈 숙명이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