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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118)붉은 악마가 촛불집회에 갔다고?

붉은 악마가 촛불집회에 갔다고?

2008년 6월 11일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한국-요르단전이 열린 지난달 31일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붉은 악마’가 포진한 N석에서 ‘경기 후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합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비슷한 시각 광화문에서는 “붉은 악마 3만명이 오고 있다”는 외침이 터져 나왔고, 군중은 환호했다.


며칠 후 대학 동아리 선·후배와 촛불집회장을 찾았다. 20여년 만에 밟아보는 아스팔트의 감각도 낯설었지만 축제와 같은 집회 분위기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줄곧 집회에 참석했다는 한 선배가 뒤풀이 자리에서 말했다. “5월 31일 밤에 말이야. 경찰의 물대포를 막던 그 태극기가 상암에서 온 것이라더군.”


여러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붉은 악마가 촛불을 들었다니.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붉은 악마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길거리 응원을 주도하며 ‘단군 이래 최대의 국민 에너지 분출’을 도왔다. 당시 거리를 누빈 사람들은 이후 대통령 선거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등을 거치며,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해 변화를 주도하는 신세대를 지칭하는 ‘W세대’라는 신조어로 불렸다. 그러나 이 W세대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논란,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에 대한 작품성 시비 때는 편협한 애국주의에 빠져 맹목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로 몰리기도 했다.


스포츠와 사회적 이슈의 결합에 관한 논란이 한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독일의 시민사회는 독일월드컵과 맞물린 ‘국가주의 논쟁’을 벌였다. 최근 중국에서는 티베트 사태와 베이징올림픽 성화의 서울 봉송 과정에서 드러난, 폭력을 동반한 중국 젊은이들의 뒤틀린 애국주의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김정연 붉은 악마 행정간사에게 지난 9일 전화해 물었다. “붉은 악마가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게 사실이냐?” 마음 먹고 여러 질문을 준비했기 때문일까. 그녀의 간명한 대답에 맥이 풀렸다. “소문도 들었고, 회원들한테 전화를 많이 받았다. 모임 차원에서 참가하지는 않았다.”


태극기는? “역시 아니다. 우리 태극기는 그날 집회장에 있던 것보다 크고, 깃대도 주황색 3단 접이식이다. 우리는 변형된 태극 문양을 쓴다. 태극기 돌리는 솜씨도 우리 회원의 것이 아니다. 회원들이 개인적으로 갔을 수는 있다. 모 프로축구단의 서포터 몇 명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걸 봤다.”


하소연이 이어졌다.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붉은 악마는 끝내 안 왔다. 악마 XX들’이라는 비난 글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가면 특정 이념의 색깔을 입히고, 안 가면 광우병 소 수입에 찬성한다고 비난하고.” 하도 구설에 올라 면역이 됐다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세요”라고 되물었다. 대답이 막막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 진보 진영 선배에게 칼럼 기고를 부탁했다가 “나는 월드컵 자체에 반대한다. 축구에 어른거리는 파시즘의 그림자가 싫다”는 말과 함께 거절당했다. 섭섭했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 쪽으로 몰려가도 소신과 논리를 갖고 반대하는 사람도 몇 명은 있어야지’하며 받아 들였다.


김 간사의 말이 귓전에 남는다. “2002년 월드컵 후 선관위의 공명선거 캠페인에도 우리 사진을 못 쓰게 했을 만큼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우리에겐 축구라는 대의와 정체성이 있다.”


촛불도 중요하지만, 붉은 악마의 이름으로 서 있을 곳은 축구장이라는 얘기였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