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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140)한국축구와 종교, 어떻게 봐야 하나?

(140)한국축구와 종교 갈등, 어떻게 봐야 하나?
2014년 7월 30일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축구계에서 종교 문제는 해묵은 논란거리입니다.


특정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종교 의식을 치르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나라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외부세계와 접촉하면서 사회적 상식에 반하는 양상을 보이거나 갈등을 일으키면 심각한 문제로 전화됩니다.


한국 축구사에서도 클럽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그런 일이 여럿 있었습니다. 아래 링크 기사도 그 사례 중 하나입니다. 8년 동안, 아니 그 이전부터 오랜 기간 우리 축구계는 종교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의 일로 치부하거나 대충 덮어버리는 안이한 대처를 해왔습니다. 이번에 터진 고양 HiFC의 사태는 그 결과 중 하나일 뿐입니다.


심각한 종교갈등을 겪은 유럽이나 남미 축구계에서는 클럽의 공식활동으로서 종교행위는 물론 운영 책임자가 종교적인 언행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축구에서 종교적 언행이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 절실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글래스고더비(올드펌더비)를 이루는 레인저스와 셀틱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아시다시피 레인저스와 셀틱은 개신교와 구교의 전통에 뿌리를 둔 클럽입니다. 양쪽 서포터스는 피를 부르는 분쟁을 벌이기도 했고, 구단주가 내부모임에서 한 상대 비하 발언이 문제가 돼 사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잦은 것은 폭넓게 보장된 종교 자유 덕이기도 하지만 종교 자유에 대한 잘못된 시각, 행위 주체들의 성숙하지 못한 인식 수준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축구협회나 프로축구연맹이 종교문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유하는 일이 시급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꼭 큰 일을 당해야 정신차릴 것인가 하는 자포자기식 냉소주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997년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와 차범근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 중앙일보 '발언대'를 통해 주고받은 글을 붙입니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전하는 좋은 논쟁이었습니다. 이후 국민일보 지면에서도 비슷한 논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주장)이 이어졌지만 교회에 다니는 제 눈에도 객관성을 잃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여기서는 이후 국민일보의 논쟁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당시 글을 찾아봤지만 김용옥 교수의 글은 있는데 차범근 감독의 글은 찾을 수 없어 스크랩해둔 글의 전문을 따로 붙입니다. 바쁜 분들은 그냥 패스해도 됩니다.

2006년 6월 18일. 다음날 열릴 프랑스와 독일월드컵 G조리그 2차전을 앞두고 라이프치히 시내의 현지 교회에서 열린 예배당. 종교개혁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유서깊은 이 교회에서 열린 예배에 정몽준 당시 회장을 비롯한 대한축구협회 임직원, 이용수 KBS 해설위원(현 기술위원장)을 비롯한 축구인들, 현지 교민이 참석했다.


[히든트랙] 논란의 고양, 이영무 감독이 사임한 '진짜' 이유(정다워, 풋볼리스트, 2014.7.30)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436&article_id=0000010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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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믹스트존](2)이영무 기술위원장의 종교 활동, 괜찮을까(류재규, 스포츠서울, 2006.5.30)

http://jklyut.tistory.com/52

#이 글은 스포츠서울에 게재된 칼럼으로 제가 만든 이 블로그에 있는 글인데 링크가 안 되네요. 관심있는 분들은 불편하더라도 위 URL을 긁어 붙여서 보셔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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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차범근 감독에게 할 말 있다…입만 열면 주님 은총, 기도는 골방에서 하라셨다(김용옥, 중앙일보, 1997.10.23)

http://pdf.joins.com/article/pdf_article_prv.asp?id=DY0119971024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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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김용옥 교수에 답한다...두렵고 숨막히는 순간, 신앙인 기도 뭐가 나쁜가(차범근, 중앙일보, 1997.10.24)


그러잖아도 월드컵 최종예선이 끝나면 한가한 시간에 한번쯤 나의 신앙문제를 설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러던 차에 오늘 김용옥 교수의 글을 읽고 바로 이 글을 쓰게 됐다.
국가대표팀 감독 - . 무조건 잘 싸워서 무조건 이겨주기를 바라는게 모든 국민의 바람이다. 그 기대와 희망을 고스란히 해결하고 충족시켜줘야 하는게 바로 이 자리다.
국가대표 감독은 김 교수나 나 자신이 그동안 막연하게 느꼈던 것보다 훨씬 무겁고 힘든 자리다. 때로는 가슴이 저며올 정도로 고독하고 힘들어 자다 말고 일어나 아내에게 전화를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물론 나는 대범하지도 못하고 보잘 것 없는 인물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경기를 앞두고 숨이 막히는 고통에 시달리는 것,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그릇이다.
그때마다 나는 엎드려 기도한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어린아이가 부모님 손을 잡고 가다가 무섭거나 겁이 나면 그 손을 더 꼭 쥐는 것처럼 지금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의 손을 꼭 쥐고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심정이다. 그래서 나는 늘 기도한다.
그러나 경기 전 벤치에 앉아 기도할 때나 경기가 끝난 후 하나님께 감사할 때나 한 번도 김 교수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란스러운 몸짓을 보이기 위해 그래본 적은 없다.
내가 인터뷰에서 "주님께 감사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나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기 전 나는 우리 선수들을 감동시켜 90분 내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90분간 진두지휘하면서 한치의 흐트러짐이나 오차도 없이 매순간 정확히 판단하고 지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경기가 무사히 끝나면 나는 바로 이런 나의 기도가 이뤄졌다고 믿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겼기 때문에 감사하고 이기지 못하면 감사하지 않는 게 아니다.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숙인 스님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신부, 수녀님들을 볼 때면 그분들의 기도 모습이나 형태가 어떤 것이든 코끝이 찡해옴을 느낀다.
나에겐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도사도 아니고 종교 편싸움 선봉에 선 사람도 아니다.
그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믿음 때문에 마음이 편해지고 힘이 생기는 우둔한 사람이다.
얼마 전 KBS-TV가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난 후 현장 인터뷰를 옮기는 과정에서 "주님께 감사한다" 는 인터뷰 첫머리가 잘린 모양이었다. 기독교인들이 KBS에 전화를 해서 "일부러 그랬다"며 항의를 수도 없이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종교를 가진 열성 신앙인들이 마음에 평화는 없고 편견과 피해의식으로 모든 것을 내 입맛에 맞추려고 아우성치는 것 같아 정말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비록 공부를 많이 한 종교학자가 아니지만 어느 종교든 투쟁만 있고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김교수의 말대로 후임 감독이 부처님을 믿든, 알라를 믿든 그것은 나에게 묻고 따질 일이 아니다. 단지 그들이 스스로 의지하는 신으로부터 용기와 힘, 그리고 평화를 얻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종교의 자유가 있고 그가 아무리 공인이라 해도 그것은 지탄받아야 하는 '나쁜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범근이가 기도하고, 차범근이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차범근이가 자꾸 이긴다고 해서 기독교의 모든 문제가 합리화되는 것도, 다른 종교가 부인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나 자신이 공인의 룰을 어긴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지나친 종교논리로 비약하려는 것은 나로서도 유감스럽다.
이전의 어느 감독은 월드컵을 앞둔 중압감에 입이 돌아가고 말았다. 또 유럽의 많은 감독들이 알콜에 빠져 중독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지금처럼 숨막히는 때 나 역시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모든 국민이 지금은 한 발짝 떨어져서 기도하는 형식이나 모습보다 기도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