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일본전, 히딩크에 이입된 한국인 감정
2006년 6월 13일
2006독일월드컵 F조 첫 경기 호주-일본전이 벌어진 12일 오후 10시(한국시간) 프랑크푸르트 월드컵경기장 미디어센터(SMC). 다음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열릴 한국과 토고의 G조 첫 경기에 앞서 기자석 티켓을 받고 통신시설을 점검하는 한편 한국과 토고의 그라운드 적응 훈련을 취재하기 위해 분주하던 한국 취재진 50여명의 시선이 대형 화면으로 쏠렸다.
독일 쾰른 광장의 지하도에 그려져 있던 벽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패러디했다.
경기 초반 히딩크 감독이 4년 전에 비해 얼굴에 살이 많이 붙었다는 등 가벼운 잡담을 하던 취재진은 전반 26분 호주가 일본의 수비형 미드필더 나카무라에게 선취골을 내주는 순간 일제히 ‘허어’하는 탄식을 뱉어냈다. 다카하라가 볼을 잡으러 나오던 호주 골키퍼 슈워처의 몸을 팔을 뻗어 밀치는 상황이 느린 화면을 통해 되풀이해서 비춰지면서 한국 취재진의 감정은 이미 골키퍼 차징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하는 히딩크 감독의 그것에 이입되고 말았다.
후반 24분 비두카의 프리킥이 일본 GK 가와구치의 선방에 막히자 아쉬워하던 취재진의 시선은 후반 38분 알로이시의 왼발슛이 또 걸리자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1분 뒤 케이힐이 동점골을 터뜨리고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뒤풀이가 나오면서 달아오른 ‘관전’ 열기는 후반 44분 케이힐의 역전골, 인저리타임 알로이시의 쐐기골이 이어지자 절정으로 치달았다. 얼이 빠진 채 참담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일본 선수들을 바라보는 느긋한 시선은 어느 순간 한·일전 승리 후의 그것을 닮아 가고 있었다.
이란이 멕시코에 3-1로 패하면서 아프리카에 이어 아시아 축구의 위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같은 아시아인의 패배에 환호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한 외신기자의 눈에 새겨진 의문부호들은 독도 문제를 비롯한 한일 양국의 굴곡진 역사와 현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2002년 성과의 의미에 대한 설명에 하나씩 풀렸다. 카이저스라우테른 현장에서 호주-일본전을 취재한 한국 기자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은 히딩크 감독이 “한국 명예시민인 것이 자랑스럽다. 한국팬들도 봤다면 4년 전 폴란드전을 떠올렸을 것이다. 일본은 그 반대였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소식을 듣고 피를 뛰어넘는 동질감을 느낀 것도 위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한 기자는 “히딩크 감독이 이런 절묘한 멘트를 통해 한국에서 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가겠느냐”고 말했지만 분위기를 바꾸기는 커녕 이미 끄기 힘든 유쾌한 웃음에 불꽃 하나를 더하는 작은 불쏘시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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