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김호, 당신이 진짜 주류입니다
2007년 7월 17일
1년 전만 해도 김호 감독과 소주를 한 잔 할 때면 듣는 말이 “나는 갈보는 아니요”였다. 3년 8개월여만에 대전 시티즌을 통해 프로무대에 복귀한 최근 그는 “나는 잡초요”라고 말했다. 전자가 풍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자기결단이 서린 부정어라면 후자는 자신의 존재를 새로 규정하는 긍정어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이 편해진 것이 반가웠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천직인 ‘기술자(그는 축구 감독을 늘 이렇게 부른다)’로 현장에 돌아온 그의 가슴은 새 의욕으로 불타는 듯 했다.
서슬 퍼런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원칙을 잠시 접고 약관의 청년처럼 이글거리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도대체 잡초가 무슨 말입니까. 혹시 비주류라는 뜻이라면 지나친 겸양이지요.”
대학 교정에 사복경찰과 중무장한 전투경찰, 한없이 눈물을 자아내던 최루가스 분사 차량이 상주하던 살벌한 시절. 막걸리집에서 밤늦도록 민중가요를 부르다 단호하게 던져 버린 옛 길에 대한 미련이 고개를 들 때면 동석한 선배에게 묻곤 했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이 노래들에 과연 진실이 담겨 있을까요.”
선배 왈 “시정에 흘러 다니는 유행가보다. 세종문화회관을 울리는 클래식보다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이 노래가 훨씬 더 고급문화가 아닐까.”
목 터져라 불렀던 그 노래들마저 이젠 반주기의 가사 없이는 더듬거릴 만큼 시간이 흘러 갔다. 유행가에도 전문성과 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지금 스스로를 낮추는 김 감독에게 강변했다.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을 새롭게 하는 창조의 열정과 질긴 생명력을 빗댄 것이 아니라면 ‘잡초’라는 말은 틀린 얘기라고, 그의 애창곡 제목 ‘외길’처럼 평생 한눈 팔지 않고 기술자의 외길을 지혜롭게 헤쳐온 김 감독이야말로 축구계의 주류 중 주류라고, 전문성과 축구철학의 빈 그릇을 외부의 권위나 패거리에 기대 채우려 하거나 본업을 뒤로 한 채 주변을 기웃거리는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야말로 비주류가 아니겠느냐고.
노 감독의 표정은 흡족한 것 같기도 했고 회한에 잠겨 착잡한 것 같기도 했다.
먼 길을 달려오는 동안 그의 옷깃에 먼지 한 점 정도는 왜 안 묻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장 대표팀 지휘봉을 맡겨도 믿을만한 전문가이자 프로 통산 최다인 13차례 우승컵을 안은 깊은 경륜의 소유자인 그를 축구계가 잔소리나 해대는 한물간 뒷방 늙은이인양 안쓰런 시선으로 쳐다봤다는 사실이다. “처음 지휘봉을 쥘 때처럼 가슴이 설렌다”는 그의 말은 이같은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야박하고 사려깊지 못한 것인지를 새삼 일깨운다.
김 감독이 땀과 눈물을 쏟으며 출생을 도왔고 키웠던 수원삼성을 떠나던 날 수원월드컵경기장엔 ‘마이 웨이’가 울려 퍼졌다. 서포터스는 눈물을 흘렸고 그도 속으로 울었다. 그런 그가 여봐란 듯 다시 세상에 나왔다. 노 감독이 대전월드컵경기장을 떠날 때도 같은 장면이 연출되기를, 그를 통해 한국축구가 더 깊고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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