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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52)‘칠보선생’ 안종복 인천 사장의 새 도전

‘칠보선생’ 안종복 인천 사장의 새 도전

2007년 3월 13일



마음먹은 일은 해내고야 마는 추진력,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꽉 막힌 현실을 타개하는 기획력과 수완, 누구를 만나든 금방 설복시키는 언변과 친화력을 가진 인물. 청소년대표 출신으로 프로축구단 주무로 출발해 국내 최초로 축구인 출신 최고 경영자가 된 사람. 축구인들은 그가 누구인지 단박에 안다. 지난 9일 인천 유나이티드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임된 안종복 사장(54)이다.


널리 알려진 그의 별명은 ‘철모’다. 머리가 너무 커 쓸 철모가 없었다는 사연에서 연유했다. 그러나 그를 좀 더 아는 사람들과의 자리에서는 가끔 다른 별명이 폭소와 함께 등장한다. ‘칠보선생(七步先生)’. 술을 잘 못하지만 잔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 남몰래 '처리'하는 기술도 수준급인 그가 젊은 시절 어느날 옅은 취흥 속에 귀가하다 집 앞 어두운 골목길에서 하수구 공사판을 만났다. 뒤로 일곱걸음을 물러선 뒤 앞으로 달려가 뛰어 넘으려 했으나 반걸음을 잘못 계산해 마지막 디딤발이 공사판에 빠졌고 가속도를 못 이긴 몸은 앞으로 무너졌다. 맞은 편 공사판 턱에 얼굴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 때의 일로 그는 이 몇 개를 갈아야 했지만 그럴 듯한 별호를 얻었다.


지난해 그는 오래 전 그 때처럼 자신만만하게 뛰어 가다 몹시 아픈 일을 겪었다. 그러나 곧 훌훌 털고 일어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가볍게 훌쩍 뛰어 넘었다. 이번에 들은 소식은 그 뒤끝이어서인지 더 반갑고 시원하다.


축구인들이 그의 최고 경영자 취임을 예의주시하는 것은 ‘축구인 최초’라는 수식어에 의미를 둔 것만은 아니다. 앞의 긴 수사가 딱 들어 맞는 인생 역정,것을 이끌어온 그의 에너지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도저히 안 될 것 같던 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쉽게 풀린다.


프로축구 원년인 1983년 대우 로얄즈(현재 부산 아이파크) 창단에 참여한 그는 단장 시절인 1997년 바닥을 헤매던 팀을 정규리그와 2개의 컵대회를 석권한 최고의 팀으로 바꿨다. 고교 시절부터 공을 들였던 안정환(수원)을 1998년 입단시켜 한국축구의 대표 스타로 키웠다. 2000년 구단이 현대산업개발에 넘어간 뒤에는 에이전트로 변신해 안정환을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세리에A에 보냈다.


2003년말 인천을 창단해 리그 합류 2년만인 2005년 전·후기 통합 1위, 리그 준우승을 일궜다. 지난해 한국 프로축구단 사상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선수가 아닌, 일반 학생들이 뛰는 중학교 대항전 ‘미들스타리그’를 운영해 축구 불모지 인천에 축구붐을 일으켰다. 1988년부터 4년간 대한축구협회 기획관리실장을 맡았고 지난해에는 K리그 14개 구단 단장들의 협의체인 프로축구단장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구단 밖에서도 자신의 축구철학과 경영원칙을 전파하고 있다.


자신이 주도해 만든 드래프트제를 스스로 파기해 자유계약제로 전환했다가 재도입하는 등 임기응변이 지나치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선 자리에서 정성을 다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도전과 성취와 한계는, 완벽한 틀을 못 갖추고 출발해 뒤뚱거리지만 끊임없이 전진하는 한국축구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