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재미 더하는 코치박스 두뇌 싸움
2006년 4월 5일
지난 2일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이 삼성화재의 9년 아성을 깨고 V-리그 남자부 우승을 확정한 순간 김호철 감독이 미국 출신 외국인 루니를 마주보며 환호하던 사진처럼 때로는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지난 2002년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이 결승골을 넣은 뒤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얼싸안던 장면을 연상케 했다.
김호철 감독은 경기 중 역동적인 액션으로 선수들과 ‘함께 뛰는’ 사령탑으로 정평이 나 있다. 패장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평소 “타고 나야지. 나도 시도해 봤지만 체질이 아닌 걸 절감하고 그만 뒀다”면서도 ‘40년 지기’의 열정만은 부러워했다. 프로축구에선 조광래 전 FC서울 감독도 경기 내내 선수들과 함께 호흡한 것으로 유명하고, 지난해 K-리그 우승을 일군 울산현대 김정남 감독은 팔짝팔짝 뛰며 기뻐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전파를 탔다. 반면 김호 전 수원삼성 감독은 벤치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고, 허정무 전남 감독은 벤치 기둥에 기댄 채 경기장을 응시하는 카리스마로 주변을 제압한다. 차범근 수원삼성 감독과 박성화 전 청소년대표팀 감독은 경기 전후를 기도로 장식했다.
허정무 감독은 98년 방콕아시안게임 때 “왜 벤치에 가만히 있느냐”는 중국 기자의 질문에 “경기 전 전술적인 틀을 선수들과 공유한 상태에서 새로 지시를 내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대답했으나 막상 태국과의 8강전에선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벌떡 일어났다. 조광래 전 감독은 “최소한 선수들에게 감독의 마음을 전달해 경각심을 갖게 되지 않겠느냐”는 설명과 함께 “팬 서비스도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지난달 열린 2006년독일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코치박스(Technical Area)’에서는 1명만 작전지시를 할 수 있다는 결정을 해 감독 통역의 출입을 허용치 않기로 했다. 이 규정은 2002년월드컵 때도 있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의 통역을 맡았던 전한진 대한축구협회 대표팀 지원부 차장은 “히딩크 감독이 박항서 코치나 정해성 코치를 통해 지시를 내리다가 본인이 직접 코치박스로 뛰쳐나갈 때는 나도 나갈 수밖에 없었다. 대기심이 제지하면 감독을 말리는 시늉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감독의 의중을 전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처럼 외국인이 지휘봉을 쥔 일본 등이 반발하고 있지만 국제축구연맹이 규정을 바꾸거나 완화할 생각은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축구는 흔히 전쟁에 비유된다. 그라운드가 전투의 현장이라면 벤치는 작전 사령부다. 팬이 조금만 더 여유를 갖고 시선을 넓힌다면, 선수교체를 포함한 코치박스 내에서의 움직임과 선수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축구를 더욱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다. 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전투 장면과 함께 적의 움직임, 사령탑의 두뇌싸움을 함께 보여주는 것도 이같은 효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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