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삼족오'라는데... 정체성 없는 프로연맹
2006년 2월 1일
연초 행정자치부가 내년 2월 제작에 들어가는 새 국새의 손잡이 부분을 장식할 상징물에 대한 국민제안을 받은 결과 '세 발 달린 까마귀(삼족오·三足烏)'가 가장 많았다고 발표하면서 축구계에서도 논쟁이 일었다. 고대 동북아의 태양숭배 사상의 산물인 삼족오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기원전 4000년의 중국 양사오 토기, 이집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다. 축구팬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일본축구협회가 삼족오, 일본어로는 '야타가라츠'를 지난 1930년대부터 공식 엠블럼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 1999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마스코트 '킥키기'를 발표했을 때 야타가라츠를 거론하며 마스코트의 제작과정, 컨셉, 상표 소유권 등의 문제와 함께 밀실에서 수의계약으로 만든 국적 불명의 상징물을 한국 프로축구를 대표하는 엠블럼로 해서 되겠느냐고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다. 비판에 귀를 닫았던 프로연맹은 2003년 소리 소문없이 '킥키기'를 통한 마케팅을 접고 2002년 월드컵 3·4위전 한국-터키전에서 국가대표팀 서포터스 '붉은 악마'가 펼친 카드색션의 내용이었던 'CU@K-리그'로 대체했다.
프로연맹이 지난해말 공모를 통해 '스피드 스타'라는 새 엠블럼을 선정해 올시즌 개막 직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지난 1999년의 '킥키기 사태'가 반복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지난 1983년 출범 이후 적자 속에서도 축구에 대한 애정을 지켜온 프로축구단과 지도자, 선수, 팬 덕분에 한국축구는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고 올해는 독일에서 또 신화를 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한국 프로축구가 연륜에 걸맞는 내실을, 특히 행정 측면에서 갖췄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한국 사회 전체에서 축구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 특성, 역사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논의가 졸속으로 진행돼 확고한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체계적인 마케팅을 꿈꿀 수 없었다.
한국프로축구에 대한 정체성 논란은 비단 마스코트와 엠블럼에 국한되지 않는다. 연맹 규정 제1장 1조에 나오는 'K-리그'라는 명칭 자체도 무엇을 뜻하고 지향하는지 불분명하다. 일본 'J리그'의 모사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판이다.
'월드컵의 해'인 올해 프로축구는 리그 일정의 희생을 포함해 많은 부분을 대표팀에 양보했다. 프로연맹은 월드컵 이후 프로축구에 불어닥칠 특수를 꿈꾸기 전에 이 기회에 프로축구의 본질적인 문제를 정비해 월드컵을 통해 안목과 의식이 업그레이드된 새 손님을 맞기 위한 준비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관중을 앞에 두고 쩔쩔 맸던 2002년의 전철을 올해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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