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우승 뒤풀이'와 성남의 '남자의 눈물'
2007년 11월 13일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이 끝난 11일 밤. 패자 성남과 승자 포항 프런트를 약 두 시간의 시차를 두고 만났습니다. ‘양다리’를 걸친 것이자 ‘두 탕’을 뛴 셈이죠. “위로주 한 잔 사라”는 성남 프런트의 강권에 못 이겨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 “우리와 기쁨을 함께 하자”는 포항의 요청에도 응했습니다.
포스코센터 4층 아트홀에서 열린 포항의 우승 축하연은 가수 장윤정과 소녀시대의 공연과 함께 한껏 흥에 겨웠고 이어진 뒤풀이에서는 포항 선수단이 어떻게 ‘기적’을 만들었는지, 프런트는 어떻게 선수단을 뒷바라지했는지에 대한 얘기가 풍성했습니다. 김현식 사장은 파리아스 감독의 재계약에 대해 “우리는 잡고 싶다. 그러나 협상이 남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우승의 일등공신인 따바레즈가 FC서울의 브라질 출신 친구 두두를 데리고 김 사장에게 인사를 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은 즐겁습니다. 그러나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은 고통스럽죠. 성남 프런트와 저녁식사 자리에 대한 얘기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안타깝고 속 쓰린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정규리그 1위팀이 승점이 16점이나 낮은 5위팀에게 챔피언 트로피를 넘겨주게 하는 6강 플레이오프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한 얘기도 있었지요.
성남 프런트와 저녁자리가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정철수 사무국장이 갑자기 기자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스포츠의 생리이고, 패자는 유구무언이라고 하지만 뜻하지 않는 자리에서 ‘남자의 눈물’을 보는 것은 당혹스런 일이었습니다. 올시즌 6개의 타이틀에 도전했다가 결국 빈 손으로 물러선 성남의 상실감은 커 보였습니다. 내년 시즌 정상도전 의욕을 다지는 성남 선수단에 큰 폭의 변화가 일 것이라는 예감도 들었습니다.
‘버스 위에 탄 사람들’이라는 정치학 용어가 있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후보와 캠프 관계자들이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비는데 그 버스 안에는 기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자가 같은 버스를 타는 후보와 비슷한 정치적인 견해를 갖게 된다는 겁니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심리학 용어도 있지요. 1973년 8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은행을 털려던 강도들이 직원들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6일 뒤 풀려난 인질들은 강도들의 행위를 두둔했죠. 경찰을 도왔던 범죄심리학자 닐스 베예로트는 인질이 강도를 두둔하는 현상에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붙였다죠.
돌아 보면 축구담당 기자들도 선수들과 한시즌을 온전히 ‘함께 뛰었습니다.’ 선수단 버스에 함께 타지도 않았고 인질로 잡힌 적도 없지만, 포항의 우승을 축하하면서도 성남의 눈물이 가슴아픈 ‘이중적인’ 기자는 과연 ‘버스 위에 탄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축구의 마력에 세뇌당한 ‘스톡홀름 신드롬’의 희생자일까요. 시즌을 마감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질문입니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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