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해, 장정에 나서며
2006년 1월 3일
다시 월드컵의 해를 맞았다. 4년만에 장정에 나서는 새해 아침 많은 물음에 마주한다. 어느 팀이 정상에서 환호할 것인가. 어떤 전술이 등장할 것이며 세계축구계의 판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세계의 지성들은 축구를 매개로 무슨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담론을 쏟아낼 것인가. 무엇보다도 한국축구는 이번 월드컵에서 어떤 성적을 낼 것인가.
도전과 수성의 길에 나선 월드컵의 해 벽두에 98년 프랑스에서의 참담한 실패 뒤 몰아쳤던 풍파가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이구동성으로 16강의 염원을 노래한 매체들은 한국축구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엄한 진단의 의무를 팽개치고 천박한 상업주의와 전문성 부족을 여지없이 드러낸 ‘냄비언론’으로 질타를 받았다. 월드컵 전 실패 가능성을 언급한 한 매체는 그해 말 ‘정론지’가 됐다.
황우석 교수의 말에 속수무책으로 놀아난 언론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는 이 순간 다시 묻는다. 스포츠는 투여한 땀과 시간,재화와 자본이 그대로 산출되는 산업인가. 2002년의 경험은 이 법칙이 그대로 통하지 않음을,축구는 공식에 숫자를 채워넣으면 정답이 나오는 수학문제가 아님을 입증했다. 98년 좌절한 한국은 4년 뒤 4강에 올랐고 98년 모국에서 우승컵을 쥔 프랑스는 4년 뒤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2002년 열풍 뒤 한 축구인은 “감당하기 힘든 숙제를 스스로 내고 머리를 싸매고 해결책을 찾기에 골몰하던 관행을 버리고 이젠 축구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은 아니다. 여전히 세계축구의 변방이자 축구개발도상국인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1승을 노리기에도 벅차며 참가 자체에 의미를 두고 강호들의 화려한 축구쇼를 지켜보는 것에 만족하자고 해야 옳은가.
스포츠의 가치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향해 달음박질하면서 울고 웃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던 ‘나를 넘어선 우리’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스포츠의 힘이다. 물론 그 도전이 나와 상대를 살피지 않고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맹목의 질주여서는 안 된다. 그라운드에 선 11명의 선수와 그들을 주시하는 수천 만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대동의 어울림도,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올바르게 구사할 전략적 혜안도 필요하다.
월드컵은 축구에 죽고 사는 팬들에게는 신나는 잔치판이다. 그러나 그 전쟁의 복판에 선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격렬한 노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다시 설렘 속에 출발점에 섰다. 한국축구가 조별리그에서 발길을 돌릴지,16강이 적절한 목표인지,8강에 오를지,혹은 우승컵을 거머쥘지,아직 아무도 모른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월드컵은 현대인이 함께 쓰는 신화의 현장이다. 폐막의 그 날 폭포수처럼 쏟아질 영광과 감동의 순간,그 살 떨리는 유혹의 현장을 향해 달려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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