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과 오기로 일군 김기동의 402경기 출전
2007년 5월 1일
“할 일은 꼭 하고. 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 것이죠.”
포항의 맏형 김기동(35)은 지난달 29일 대구와 홈경기에서 프로축구 통산 필드 플레이어 최다인 402경기 출전이라는 신기록을 세운 뒤 “도대체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1990년대 일화(현 성남)에서 뛴 모 선수가 아내와 잠자리 뒤엔 꼭 수백회 팔 굽혀 펴기를 했다는 전설과 같은, 색다른 대답을 기대했지만 김기동의 말은 너무나 평범한 공자님 말씀이었다.
1992년 신평고 졸업 뒤 포항제철(현 포항)에 입단한 김기동은 이듬해 유공(현 제주 유나이티드)으로 이적했다가 2003년 포항으로 돌아와 팀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15년에 걸친 자신과 싸움 끝에 얻은 결실에 어찌 눈물겨운 사연이 없을까.
19 97년과 2004년에는 부상으로 몇달씩을 쉬었다. 1995년 유공 시절 스위퍼 시스템을 과감하게 버린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 수비형 미드필더인 그에게 황선홍(포항) 김도훈(전북) 등 당대 최고 골잡이를 마크해 볼을 뺏고, 빠른 볼 전개로 역습을 이끌라는 중책을 맡겼을 때 주변의 질시에 페이스를 잃었고 간신히 잡은 주전자리를 뺏기기도 했다. 수비가 약한 공격형 미드필더 윤정환을 보좌하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팀 공헌도는 내가 최고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연봉이 늘 윤정환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때는 남모르게 분을 삭였다. 여러차례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왜소한 체격(171㎝, 68㎏) 때문에 훈련만 하다 돌아올 때(통산 A매치 3출전)는 심한 모멸감에 몸을 떨었다.
그가 이번에 세운 대기록은 이처럼 음지에서 흘린 눈물과 한숨,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성실성이 빚어낸 찬란한 꽃이다. “몸싸움에 노출된 수비형 미드필더는 체력에 문제가 생기면 금세 집중력을 잃고, 주변 상황을 미리 살펴 패스를 내주는 리듬을 놓치고 만다. 결국 부상에 희생된다”는 그의 말에서 느껴지듯 체력훈련은 그가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금과옥조다.
아내 조현경씨(31)의 내조는 그가 긴 세월 동안 프로축구선수의 길을 한결같이 걸어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매일 새벽 4시면 홀로 깨어나 새벽기도를 올리는 조씨는 그가 어쩌다 좀 늦게까지 맥주라도 한 잔 할라치면 “힘들다는 말은 거짓말이군요. 빨리 귀가해주세요”라는 애교성 문자를 날린다. 대기록을 세운 날 김기동은 그런 아내에게 “여기까지 오게 해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진심으로 건넸다.
김기동의 다음 목표는 500경기 출전이다. 올해 계약이 끝나면 구단에 2년 연장을 요청할 생각이다. 프로통산 최다인 441경기에 출전중인 김병지(서울)와 경쟁의식도 있다. 2003년 포항에서 한솥밥을 먹던 그는 김병지와 같은 날 300번째 경기에 나섰다. 이날 이후 김병지는 유니폼에 500경기 출전을 뜻하는 ‘GO 500’이라는 글귀를 새기고 휴대전화 레터링에도 같은 문구를 쓴다. 성실성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프로축구의 두 선참이 쓰는 역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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