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맨' 안정환의 부산항 귀환까지(上)
2008년 3월 27일
안정환(32·부산 아이파크)이 마침내 '꽃피는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자연인이 아닌 '축구선수' 안정환이 부산을 떠난 것은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페루지아 입단이 확정된 2000년 7월 22일 밤. 안정환은 사흘 뒤인 7월 25일 페루지아 입단을 위해 출국했다. 지난 1월 21일 부산 대저동 클럽하우스에서 안병모 단장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입단식을 치렀으니 안정환의 부산 귀환에는 무려 7년 6개월 가량이 걸렸다.
안정환이 부산 소속으로 뛴 마지막 경기는 2000년 7월 5일 목동운동장에서 벌어진 부천SK와 K리그 원정경기였다. 운희준의 선취골로 1-0으로 앞선 후반 10분 정석근과 교체 투입된 안정환은 후반 25분 2-0으로 앞서가는 왼발 추가골을 터뜨렸으나 부산은 후반 35분과 48분 조진호와 이원식에게 잇따라 골을 내줘 2-2로 비겼다.
지난 9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벌어진 전북현대와 K리그 부산 개막전으로 치면 안정환은 실로 7년 8개월 4일만에 부산 소속으로 그라운드를 누빈 셈이다.
안정환의 마지막 부산 홈경기였던 2000년 6월 21일 전남전(이날도 선발 출전한 안정환은 후반 33분 2-1 승리를 확정짓는 결승골을 터뜨린 뒤 물러나왔다)을 기준으로 하면 안정환의 '부산 복귀'에 걸린 날짜는 더 늘어난다.
안정환이 부산을 떠난 뒤 되돌아오기까지의 긴 여정과 복귀의 의미를 정리해 보자.
◇부산을 떠나 6개팀을 돌고 돌다
부산을 떠난 7년 6개월 동안 안정환은 페루지아(2000년 7월~2002년 8월)를 시작으로 일본 J리그 시미즈 S 펄스(2002년 9월~2003년 12월), 요코하마 마리노스(2004년 1월~2005년 6월), 프랑스 르 샹피오나 FC메츠(2005년 7월~2006년 1월), 독일 분데스리가 MSV뒤스부르크(2006년 1월~8월), 수원삼성(2007년 1월~12월)까지 6개팀을 전전했다.
1998년 프로무대에 처음 선 부산 대우와, 2000년 초 현대산업개발로 주인이 바뀐 부산 아이파크(당시 명칭은 부산 아이콘스)를 포함하면 안정환은 10년 동안 총 8개팀을 거쳤다.
한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일본 등 5개국의 프로 리그를 경험하는 독특한 경력도 쌓았다. 2000년 이탈리아 페루지아 진출 직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라싱 산탄데르에 입단할 뻔 했고, 2006년 독일 뒤스부르크행에 앞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입단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는 점을 되새겨 보면 안정환은 유럽의 주요 리그를 간접적으로 섭렵한 셈이다.
이적시기만 되면 안정환을 둘러싼 새로운 팀의 이름이 거론됐다. 안정환이 실제로 뛰었거나, 입단할 것이라고 오르내린 팀의 숫자는 100개에 육박할 것이라는 우스개소리가 취재진 사이에서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안정환이 그토록 많은 팀을 돌았지만 완전하게 주전 자리를 굳힌 것은 부산대우 시절이 유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단 첫 해인 1998년 이동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끝내 신인왕 타이틀을 놓친 안정환은 1999년에는 K리그 MVP에 올랐다. 이 때와 2002년 한·일월드컵 때가 안정환의 축구인생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난 황금기였다. 안정환의 대표적인 별명 '테리우스'와 '반지의 제왕'이 각각 부산 대우 시절과 2002년 월드컵을 전후해 생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7년 6개월만에 이행된 부산 복귀 합의서
안정환의 부산 복귀는 7년 6개월 전인 2000년 7월 24일 정몽규 구단주와 한 구두 약속과, 서면 복귀 합의서의 이행이었다. 안정환이 부산 구단에 써준 합의서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그 존재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안정환 본인과 정몽규 구단주, 이병기 당시 부산 단장(현 효동종합건설 대표), 안정환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안종복 전 부산 단장(현 인천 유나이티드 대표) 등 극소수만 알고 있었다.
앞서 쓴 대로 안정환의 페루지아행이 최종 확정된 것은 2000년 7월 22일이었다. 안정환은 이탈리아로 출국하기 하루 전인 7월 24일 서울 역삼동에 있던 현대산업개발 본사를 찾아 정몽규 구단주에게 출국인사를 했다. 오전 7시 30분 양자간 만남은 해외진출 과정에서의 줄다리기 때문인지 싱겁게 끝났다.
국내 취재진 중 현장에는 스포츠서울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각 1명, 이렇게 2명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서 안정환은 "반드시 성공하고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했고 정 구단주는 "돌아올 때는 더 성대한 환영을 받을 수 있도록 해라. 현지 적응을 위해 이탈리어를 빨리 배워라"고 충고했다. 그동안 실무선에서 논의됐던 부산 복귀 합의서는 이 자리에서 매듭이 지어졌다.
안정환이 쓴 합의서의 공증을 받기 위해 변호사가 출근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정 구단주를 뺀 일행은 인근 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때웠다. 정 구단주가 다른 특별한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안정환이 "사인을 해 달라고 해서 '회장님, 행운을 빌겠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사인을 해준 게 전부인데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정환은 예전 구단주가 스타 플레이어를 부르면 '용돈'을 주던 관행을 선배들에게서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내심 이탈리아 현지 적응에 필요한 금전적인 도움을 기대했던 안정환으로서는 섭섭한 마음이 들만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공증을 거친 안정환의 합의서는 양측이 한 부씩 보관하고 있었고, 안정환은 올해 초 부산 복귀로 형식적으로는 당시의 합의를 이행한 셈이 됐다.
◇멀고 먼 페루지아, 멀고 먼 유럽무대
이쯤에서 안정환의 유럽행에 얽힌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해설기사의 제목처럼 안정환에게는 참으로 '멀고 먼 페루지아, 멀고 먼 유럽무대'였다.
1998년 당시 부단 대우는 안정환과 입단 협상을 하면서 신인왕 또는 MVP에 오르면 외국진출을 보장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그리고 1999년 마침내 MVP에 오르자 안정환은 이제 외국으로 갈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2000년 2월 북중미골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 LA의 래디슨호텔에 묵고 있던 안정환으로서는 '비보'가 터졌다. 구단의 모기업이 대우그룹에서 현대산업개발로 바뀐 것이다.
귀국 후 당연히 안정환은 유럽에 보내 준다는 약속을 승계해 지켜줄 것을 요구했고, 부산대우 구단을 살 때 안정환에 대한 가치가 전체 금액의 30%에 이른다는 판단을 했던 현대산업개발은 안정환의 요구를 선뜻 들어줄 수 없었다. 안정환이 부상을 이유로 훈련에 참가하지 않고, 중국 프로팀과 구단 인수 기념 친선경기에도 결장하는 등 보름여 신경전을 벌인 끝에 양측은 3월 5일에야 그해 6월 이후 유럽진출에 합의했다.
두 달이 지난 5월 26일 페루지아가 에이전트 이영중씨를 통해 '임대 후 완전이적'의 내용을 담은 구단주 명의의 초청장을 보내왔다. 페루지아의 조건을 검토한 이병기 단장은 계약조건이 구단이 수락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안정환이 이탈리아보다는 스페인 축구를 선호한다는 이유를 들어 6월 15일 직접 스페인으로 출국했다.
라싱 산탄데르와 역시 '임대 후 완전이적'에 합의한 이 단장은 귀국길에 페루지아에도 들러 협상을 벌였으나 페루지아 측의 조건이 이영중씨에게 보낸 것과 같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귀국했다. 귀국 후 안정환과 마주 앉은 이 단장은 7월 10일까지 완전이적을 원하는 구단이 나타나지 않으면 산탄데르로 가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7월 1일 안정환이 연봉이 적다며 산탄데르행을 거부하자 구단은 산탄데르와 재협상을 통해 연봉을 상향 조정하고, 비슷한 시기에 터진 병역문제도 정리했다. 산탄데르로 가닥이 잡혀 가던 7월 16일 이번엔 안정환 측이 페루지아로 가겠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고, 구단과 안정환 측은 격한 줄다리기 끝에 7월 22일 마침내 페루지아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페루지아가 내건 최종 조건은 ▲5년간 임대 후 이적, 5년간 임대료 250만달러 ▲첫 해 임대로 40만 달러 ▲완전 이적시 추가 이적료 210만달러 ▲페루지아가 5년 내 안정환을 제3구단으로 이적시킬 경우 이적료의 15%와 5%를 각각 부산 구단과 안정환에게 배분 ▲안정환의 첫 해 연봉 35만 달러 및 수당 10만달러 ▲계약기간 내 연도별 5만달러씩 연봉 인상 ▲안정환의 초상권 5% 인정 ▲주택 및 통역, 운전기사가 딸린 차량 제공 등이었다.
조건 중 하나였던 완전이적 시 추가 이적료가 1년 뒤에 문제가 됐고 페루지아는 임대를 연장하면서 2년차 임대료로 50만달러를 지불했다. 나머지 160만달러는 안정환이 2002년 월드컵 후인 2002년 9월 J리그 시미즈 S 펄스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페루지아와 부산 구단간 갈등의 불씨가 됐다. 결국 안정환의 에이전트였던 이플레이어는 일본의 스포츠매니지먼트사인 'PM'을 끌여 들여 이 부분을 해결했다. 안정환 측이 2000년 부산 복귀 합의서는 이로써 효력이 상실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그러나 법률적인 효력 여부를 떠나, 형식적으로는 2008년 안정환의 부산 복귀는 2000년 당시 써준 합의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볼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편에는 안정환이 만약 이탈리아가 아닌 스페인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과 함께 부산 복귀에 얽힌 사연, 부산을 통한 황선홍 감독과 만남의 의미, 부산에서의 안정환의 미래 등을 살펴본다.
류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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