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새 챔피언 트로피 제작을 환영하며
2008년 3월 4일
2004년 1월 당시 포항의 박정우 사장, 최순호 감독과 함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명문클럽 바스코 다 가마 홈구장의 역사관을 찾았다. 역사관의 벽에는 팀을 거쳐간 역대 사장단의 사진과 이름까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일행의 기를 죽인 것은 100개는 될 법한 우승 트로피였다. 숫자를 더 많게 보이기 위해 사방 벽면을 거울로 장식한 이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흥분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트로피의 디자인과 크기가 모두 다른 것을 확인하고는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여러차례 우승한 포항도 이렇게 꾸며보자고 제안한 박 사장이 “트로피의 모양이 다 비슷비슷해서요”라는 황인국 사무국장의 말에 쓴웃음을 짓던 기억이 생생하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2005년 여름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를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999년 트레블(3관왕)의 감동을 전해주는 3개의 트로피(물론 진품은 아니다)와, 1958년 ‘뮌헨 비행기 참사’ 코너를 보고 영광과 아픔의 기억을 함께 버무려 상품을 만드는 그들의 마케팅 능력이 부러웠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따르면 트로피(trophy)의 어원은 ‘패배’를 뜻하는 그리스어 ‘트로파이온(tropaion)’이다. 그리스는 전장에서 적군의 참패 지점에 인간의 모습을 닮은 막대기나 해전에 쓰인 선체에 노획한 무기와 깃발을 걸고 전투 상황의 그림과 신에게 바치는 글을 새겼다. 로마인들은 전장이 아닌 로마 중심가에 트로피를 세웠다. 재질도 오래 가는 돌이나 금속으로 바뀌었다. 18세기 초 영국 앤 여왕 시절부터는 승마대회 우승자가 술을 따라 마시도록 컵 형태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축구의 대표적인 트로피는 ‘FIFA(국제축구연맹)월드컵’이다. 원래 월드컵 우승 트로피는 1930년 제1회 우루과이대회부터 사용된 ‘줄리메컵’이었다. 브라질이 1958, 62년에 이어 1970년 멕시코대회까지 통산 3회 우승해 줄리메컵을 영구소유하게 되자 새 트로피를 공모했고 이탈리아 조각가 실비오 가자니가의 작품이 현재의 ‘FIFA월드컵’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지난 3일 K리그의 전통과 권위, 축구의 열정과 우승의 영광을 담은 새 챔피언 트로피를 공개했다. 지난해 1월 시작된 새 트로피 제작에는 경남도립미술관장을 지낸 황원철 창원대 명예교수, K리그 엠블렘을 개발한 디자이너 박광호씨, 입체조각가 육은수씨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축구의 본질을 구현한 축구공, ‘선수들의 땀방울’과 ‘축구팬의 열정과 사랑’을 상징하는 두 개의 원, 리그의 정체성을 강조한 엠블럼, 세계로 나아가는 K리그의 의지를 드러낸 세계지도, 치열한 승부를 형상화한 두 마리 용 문양까지. 많은 돈과 시간, 공을 들였다는 연맹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우승의 상징물을 갖게 된 것이 고맙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프로연맹은 K리그 우승팀이 다음해 챔피언이 나올 때까지 24K 재질의 진품을 1년간 보관하며 매년 우승팀 명과 우승 연도를 새겨 넣는다고 밝혔다. 우승팀은 실제 크기의 황동 복제 트로피를 받는다. 그러나 과연 ‘진품’의 효용과 수명이 얼마나 될까. FIFA 월드컵은 하단의 녹색 띠에 1974년부터 17번째 우승국 이름이 새겨지는 2038년까지만 사용하도록 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3연속 우승 또는 통산 5회 우승팀에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 진품을 영구히 넘긴다.
‘예술품’ 트로피는 기쁜 일이지만 이것을 영구히 소유하고 싶은 승자의 마음, 새 것을 찾는 인간의 욕구와 호기심까지 배려했으면 금상첨화였겠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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