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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담(無愁閑談)

응답하라 1983! 하숙집의 추억

응답하라 1983! 하숙집의 추억

2016년 5월 21일

 

30년도 더 된 옛날 신림동 녹두거리 꼭대기쯤에 한 하숙집이 있었다.
하숙집 안주인은 서른을 갓 넘긴 '새댁'이었다. 안주인보다 다섯살 위였던 바깥주인은 일찍 직장생활을 접고 충무로 인근에서 인쇄소를 운영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 1기 졸업생이 길을 터고 후배들이 줄줄이 모이면서 이 하숙집은 동창의 아지트가 됐다.
하숙생 여부와 상관없이 동창 상당수는 이 집에서 툭하면 밥 한끼, 하룻밤 신세를 졌다.
바깥주인은 하숙생들의 형이자 바둑 친구이며 술 친구였고, 안주인은 누나이자 고스톱 친구였다.
자연히 부부는 동창의 계보, 가정형편, 연애사, 학생운동 경력도 꿰고 있었다.
동창 중 일부는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결혼 전까지는 하숙을 계속했다.
나 역시 대학 시절은 물론 아내와 결혼해 신혼살림을 차린 후에도 식객이자 한동네의 이웃사촌으로 지냈다.
이 집의 남매아이 중 둘째인 딸이 오늘 결혼식을 올렸다.
하숙집 안주인을 언니라고 부르는 아내와 막내아들을 데리고 찾은 식장에서 모처럼 고교 친구들을 만났다.
이 집과 첫 인연을 맺은 친구가 "애 엄마가 네살쯤 된 아들과 첫 돌을 맞은 딸을 데리고 하숙을 시작했을 때 내가 딸의 기저귀를 갈아주곤 했다"고 오늘 결혼한 신부와 관련된 옛 기억을 떠올렸다.
5월의 신록처럼 푸르른 신부와 신랑, 국화같은 혼주를 보니 세월의 무게를 절감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집의 공식 하숙생이었던 적이 없다. 당연히 하숙비를 낸 적도 없다.
1학년을 기숙사에서 보내고 2학년초 한 달간 봉천동의 다른 집에서 하숙을 경험한 나는 이후 대학 졸업 때까지 줄곧 자취를 했다.
돌이켜 보니 참으로 긴 세월 동안 나와 아내는 이 집과 인연을 이어왔다.
만약 그 때 그 하숙집이 없었다면.
그 엄혹했던 시절 나와 아내, 그리고 친구들의 젊은 날들은 얼마나 더 거칠고 춥고 어두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