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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트존-칼럼

(3)안정환의 문신 뒤풀이를 기다리며

안정환의 문신 뒤풀이를 기다리며

2005년 11월 15일


지난 12일 한국-스웨덴전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축구팬은 경기 뒤 상대 선수와 옷을 바꿔 입던 안정환(29·프랑스 FC메스)의 오른쪽 어깨에 새겨진 십자가 문신을 봤을 것이다.안정환의 왼쪽 어깨에는 아내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안정환의 문신은 이미 지난 2003년 5월 31일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1-0 승리를 확정하는 결승골을 터뜨린 뒤 웃통을 벗어던지면서 알려졌다.

 

2000년 3월 창원종합운동장. 이탈리아 페루지아 진출을 앞둔 안정환이 부산대우를 새로 인수한 부산 아이콘스와 기싸움을 벌리며 경기 출전을 거부할 당시(본인은 부상 때문에 출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안정환에 앞서 대전 이관우는 지난 2000년 왼쪽 어깨에 장미 문신을 했고 잉글랜드대표팀 주장 데이비드 베컴은 최근 9번째 문신을 해 화제를 모았다.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마라도나와 베론은 자국 출신의 쿠바 혁명가 체게바라의 모습을 새겼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문신은 지난 1991년 10월 유럽 알프스 산 속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인 5000년 전 주검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한다.한국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BC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미라에서 문신이 발견됐다고 씌여 있다.


'조폭'의 문신에서 혐오감을 느낀 사람들도 많겠지만 한국의 문신 역사는 깊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마한의 남자들이 때때로 문신을 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도둑의 이마에 '도(盜)'라는 글씨를 새겼다.강원도 산간지방에서는 전염병이 유행하면 이마에 붉은 동그라미를 그렸고 평안도에서는 난산하는 임산부의 발바닥에 '천(天)'자를 썼다.제주도에서는 갓난아기가 첫 나들이할 때 이마와 콧등에 솥밑 검댕을 발랐다.최근 방송 사극에서 장길산이 사랑하는 여인의 가슴에 자신의 이름에서 딴 '길(吉)'자를 새기는 장면이 방영됐다. 이처럼 한국 역사에서 문신은 멋내기 수단이자 주술부호였고 신분과 계급의 표시이기도 했다. 징벌적 의미와 함께 남녀간의 사랑과 동성간의 우정, 전염병 예방과 치료를 기원하는 매개물이었다.


현행법상 문신은 불법이다. 국방부는 문신한 사람을 징집대상에서 빼 영악한 사람들이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했고 경찰은 임용에서 제외하는 한편 '문신 예술가'를 무면허 의료시술 혐의로 단속한다.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고 가르치는 유교는 문신을 금기시하고, 논란이 있지만 기독교도 문신을 막는다(레위기 19:28).그러나 최근 들어 문신 금지는 인권탄압이라며 합법화하자는 목소리도 한편에서 높아가고 있다.


안정환의 부인 이혜원씨는 2003년 '십자가는 신앙을, 왼쪽 어깨의 문구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안정환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밝힌 얼마 뒤 "나도 비슷한 컨셉으로 문신을 새길려고 했지만 너무 아플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안정환의 문신에는 격렬한 경기 도중 소중한 재산이자 생명인 몸을 보호하고 골과 승리를 바라는 기원의 의미도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안정환이 16일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에서 또 골을 넣어 '문신 뒤풀이'를 하면 문신은 다시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축구를 통해 인권과 개성, 사랑과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축구 경기가 내포하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와 파장은 이렇게 깊고도 넓다.